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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에 흔적 고병국목사 2019-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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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갈6:11-18”내 몸에 흔적

                                                                               인사합시다. 축복합니다.

들어가는 말

요즘 문화가운데 하나는 문신이다. 문신을 기성세대의 눈에는 아직도 낯설고 어색하다. 그런데 신세대에는 자신을 표현하는 하나의 트랜드 정도로 여긴다. 그래서 그런지 많은 사람들이 몸의 일부에 문신을 한다. 문신 그러면 전에는 조금은 건달기 있는 사람, 조폭냄새가 나는 사람정도로 여겼다.

 

겨울에 가끔 사우나에 가서 보면 몇몇 사람들이 몸에 문신을 커다랗게 새긴 것을 본다. 어떤 사람은 용 그림, 어떤 사람은 흉물스러운 그림을 그리기도 한다. 문신은 신체의 일부분을 문신을 새기는 도구를 이용해 지워지지 않도록 한다. 때로 그런 문신을 새긴 사람을 만나면 같은 남자라도 섬뜩 하다. 왠지 오메 기죽어같다. 상대적으로 그런 문신을 새긴 사람은, 마치 자신이 대단한 사람처럼 보이기 위해, 더 보여주기도 하고 문신을 드러내기도 한다.

 

그런 문신이 요즘은 타투라고해서 일반 사람들도 많이 한다. 타투이스트라는 예술인도 있다. 연예인들, 스포츠인들 등 많다. 차 아무개 축구선수 등

이처럼 문신은 지워지지 않는 몸의 흔적이다. 이런 흔적은 여러 가지가 있다. 어린아이들의 어깨에 남아 있는 예방접종 주사 흔적, 과거에 앓았던 상처 흔적, 나도 오른쪽 종아리에 어릴 때 앓았던 상처가 움푹 파인 흔적이 있다. 우리는 사실 많은 흔적을 남긴다.옛 선비들의 글을 보니 그들의 살았던 흔적은 글, 문집이다. 때로는 바위에다가 글자를 남기기도 한다.

 

어떤 사람은 유신정권 시절 서슬 퍼런 정보기관에 들어가 조사 심문하는 과정에서 고문흔적이 남아 있는 자들도 있다. 고문으로 인한 흔적 중 말을 못하는 사람, 허리를 못 쓰는 사람, 걷지를 못하는 사람 등 다양하다. 이것을 고문 후유증이라 한다.

 

문제로 들어가며

그런데 바울은 오늘 자신을 소개하면서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다고 한다.

바울이 말하는 흔적이란 무엇인가? 어떤 흔적들이 있다는 말인가?

바울도 요즘 사람처럼 몸에 어떤 그림을 그리기라도 했단 말인가?

예수의 흔적이라고 했으니, 예수 그림이라도 그렸단 말인가? 십자가 그림이라도 그렸단 말인가?

아니다. 바울이 말하는 예수의 흔적은? 이것이다. 예수를 믿고 난 다음부터 자신에게 변한 것, 예수를 믿고 난 다음부터 자신에게 일어난 사건들이다. 플러스요소보다는 마이너스 요소이다.

 

1.우선 바울의 인생을 살펴보자.

바울은 변곡점이 분명하다. 예수를 알기 전, 예수를 믿기 전, 그리고 예수를 알고 난 후, 예수를 믿고 난 후, 그것이 완전히 다르다.

 

사도행전9장에 바울의 변화모습이 나온다. 변화되기 전의 바울은- 베냐민지파, 바리새인, 유대인중의 유대인, 가말리엘 문화생, 유대교 선봉자. 한 마디로 유대교에서 가장 잘나가던 사람.그대로 세월이 흘렀다면 오늘날 말하면 대학 총장쯤 될 사람. 연봉 많지요. 인기 있지요,대단한 명성 가이다.

 

2.그런 그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를 만나고 난 후의 모습은 어떤가?

전에 그렇게 자랑하고 대단하게 여겼던 것들을 헌신짝처럼 버렸다. 오로지 한 사람. 예수에게 미친 사람이 되었다. 그렇게 좋았던 예수 만나기 전의 것들이 시들시들해 졌다. 예수 만나기 전의 최고를 예수 만난 후에는 별거 아닌 것, 아니 배설물처럼 여겨 버렸다고 한다. 그러면서 복음의 빚진 자가 되어 죽을 때까지 복음을 위해 주님을 위해서, 살아가는 사람이 되었다.

 

3.복음을 전하기 위해 그가 겪는 고난과 험한 인생과정이 고후11장 이후에 나온다. 고후11:23-27“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돌에 맞아 이마가 깨졌다.

40에 하나 감하는 곤장(엉덩이를 내리치는 것)5번이나 맞았다. 39대 곤장을 5차례 맞았다.

세 번 씩이나 태장을 맞았다. 태장이란, 채찍으로 때리는 것이다. 당시 태장은 채찍 끝에 날카로운 납이나 동물 뼈들이 붙어 있다. 한번 내리치면 살점이 뚝뚝 떨어져 나간다. 태장을 맞고 죽는 사람들도 수두룩했다.

풍랑을 만나 죽을 뻔하였다. 강도를 만나 죽을 뻔 했다.

복음을 전하다가 여러 번 헐벗고, 여러 날 굶주리고, 자지 않고, 목말랐다.

 

이정도 되면 아마 몸에 상처가 남았을 것이다. 흉터가 남았을 것이다. 본문에 말하는 예수의 흔적이란 이런 것들이다. 예수를 만나고 예수를 위해 살다가 남은 고통의 흔적, 상처, 고난의 흔적, 아픔들이다. 흉터이다. 지워지지 않는 것들이다.

 

4.바울은 이 흔적을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당당하게 소개한다.

그러면서 말하지는 않았지만 갈라디아 교인들에게도 예수를 만나고 자신처럼 이렇게 고난,아품,고통의 상처가 있거나 흔적을 지녔다면 너무 힘들어 하지 마라. 그것이 당연하고 괜찮다. 이런 흔적을 가진 사람을 하늘 아버지가 후에는 분명이 보상이 있을 거라는 것이다.

 

우리들 이야기

1.여러분들도 예수의 흔적이 있는가?

우리에게도 농도 차이지만 흔적들이 있다. 예수를 만난 후 달라진 나의 모습들,

우리들에게 있을 수 있는 예수의 흔적들은 어떤 것들일까?

 

그것은 예수를 알고 믿고 난후에 겪는 손해, 어려움, 상처, 아픔들일 것이다. 즉 예수가 아니라면, 신앙생활을 하지 않았더라면 전혀 생기지도 않고 없는 것들인데 예수를 알고 난후 당하는, 만나는 것들이다.

 

)나의 이야기

나에게 예수의 흔적은 무엇일까? 우선은 놀기 좋아하고 친구 좋아하던 사람이 예수를 만나고 멀어졌다. 이제는 아는 친구가 교회계통, 목회자밖에 없다. 어떤 경우는 세상물정 모르는 바보가 되어 간다. 때로는 외롭고 쓸쓸한 마음마저 든다. 예수를 몰랐더라면 술자리 친구삼아 함께 어울려 흥겹게 살아갈 수 있었는데,예수 외에는 아는 것이 별로 없다. 그러니 외롭고 쓸쓸하다는 것이다. 아내도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예수를 몰랐더라면 멋 부리기 좋아하고, 부를 따라가면서 인생 희락을 추구하고 갈수 있었을 텐데.... 흔적을 생각하니, 오직 한길, 한 눈팔지 않고 달려온 길, 가난이요, 아직도 집이 없이 살고, 승용차 한번 타보지 못하고, 현재의 모습을 그냥 내가 짊어지고 가야 하는 것이거니 하고 살아간다. 이것도 분명 흔적이다.

 

) 한경직 목사 50년 보좌한 최창근 장로의 헌신 인생(모 신문 인터뷰)

그는 한 목사의 오른팔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 목사가 비전을 제시하면 강한 추진력에 수 백 억원 대에 이르는 재정을 투입해 그것을 현실화시킨 주역이다. 그는 1960년대 섬유사업으로 큰돈을 벌었다. 한 목사가 제안한 교육사업과 기드온협회, 사랑의 쌀 나누기운동, 실로암안과병원 설립 등에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장남 최인석씨는 1997IMF 구제금융으로 회사가 부도가 난 뒤 서류를 정리하면서 부친이 얼마나 큰일을 했는지 알게 됐다고 말했다. “남들은 우리 집안이 돈이 엄청 많아서 일부를 기부한 것으로 알고 있지만 오해다. 사실 아버지는 전부에 가까운 돈을 내놓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는 말씀이 적힌 액자처럼 최 장로는 살았다. 흔적 아닐 수 없다.

 

)우리들 이야기

물질, 가난-예수를 만났기에 할 것 다 못하고 갈 것 다 못가고 신앙으로 살려고 때로는 물질적으로 손해를 보는 경우가 있다. 어느 목사님 딸이, 피아노 전공자인데, 주일 아르바이트를 하면 수입이 훨씬 많은데, 주일이라서 손해를 보더라도 지킨다는 간증을 들었다. 흔적이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의식주는 중요하다. 먹고 살기 위해서 열심히 일하고 지치고 피곤한 몸을 때로는 집에서 편하게 쉬고 싶은데,주일이라서 교회에 힘든 몸을 이끌고 나와서 말씀을 듣고 예배를 드리는 지친 사람들의 모습도 분명 흔적이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경제적인 문제는 중요하다. 하루하루 벌어서, 한 달 내내 욕먹으면서 열심히 벌어 여기저기 쓸 것 많은데도, 이것은 하나님의 것이라고 정해놓고 또박또박 하나님께 십일조 연보하는 것은 흔적이다. 예수를 몰랐더라면 예수를 진정 만나지 않았더라면 그래도 되지 않았을 텐데.

교회 다니느라고 남편 눈치 보는 것, 흔적이다. 예수 잘 믿으려고 하다가 친구, 친척에게 배척당하는 것 흔적이다.

 

2.이런 자에게 주어지는 것들- 위로, 보상, 축복

헨리 c. 모리슨 이라는 선교사가 있었다. 그는 20세기 초, 아프리카 에서 40년간 선교하였다. 그러나 그의 열정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선교의 열매를 크게 거두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큰 아들과 작은 아들이 병에 걸려 시름시름 앓더니 죽었다. 그리고 얼마 후 두 아들을 잃은 충격에 아내마저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한꺼번에 두 아들과 아내를 잃은 선교사는 깊은 슬픔과 고민 끝에 결국 선교사역을 접고 고향인 미국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마침 그가 탄 배에는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이 휴가를 마치고 돌아오는 중이다. 배가 뉴욕항구에 입항하고 대통령이 내리자 앞엔 붉은 카펫이 깔렸고 군악대의 팡파르 소리가 울려 퍼졌다. 수많은 사람들이 마중 나와 성조기를 흔들며 환호했다. 대통령이 선착장을 빠져나가자 레드카펫도 치워졌고 군악대 나팔 소리도 멈췄고 사람들도 다 돌아갔다. 그 뒤를 선교사는 홀로 고독하게 내려오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휴가 갔다 오는 대통령은 저렇게 큰 환영을 받는데, 선교하다가 두 아들과 아내 잃고 돌아오는 나는, 맞이해주는 사람 하나 없구나! 하나님! 이것이 저의 40년간의 헌신의 결과란 말입니까?텅 빈 항구를 쓸쓸히 빠져나오는 늙은 선교사의 깊게 패인 눈가에 눈물이 흘러내렸다.

 

고독감과 실패 감으로 정신없이 거리를 헤매는데 어디선가 하늘의 음성이 들려왔다. 사랑하는 아들아! 너는 아직 고향에 돌아오지 않았단다. 네가 고향에 돌아오는 날, 레드카펫이 아닌 황금길로, 군악대 나팔소리와는 비교가 안 되는 천군천사 나팔소리와 함께 내가 직접 너를 마중하마.” 이 음성을 들은 선교사는 이후 다시 아프리카로 돌아가 마지막까지 충성을 다하였다.

 

힘들고 고달픈 나그네 길을 당당히 걸어갈 수 있는 힘은 바로 이 하늘본향을 바라보는 데에 있다. 우리 인생에서 가장 좋은 날은 아직 오지 않았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예수 흔적을 외면하지 않는다.

예수 믿는 믿음 때문에 외로운가? 하나님이 친구가 되어 주신다고 한다.

예수 믿는 믿음 때문에 가난한가? 신앙을 버리고 살았으면 지금보다는 더 부할 수 있었는데,예수를 잘 믿어 보려고 예수를 잘 따라가기 위해서 이렇게 가난하고 어려운가? 주님이 기억하신다.

 

어리석은 사람은 지금, 여기만 본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여기가 아닌 거기를 생각한다. 골로새서3장에 위엣 것을 찾으라하면서 위는 거기, 그리스도가 하나님 우편에 앉아 있는 곳을 말한다. 그렇다. 우리의 보상은 여기가 아닌 거기이다. 우리의 위로는 사람이 아닌 주님이시다. 우리의 칭찬은 사람이 아닌 하나님이시다.

 

바울처럼 예수의 흔적을 몸에 지닌 자. 예수 믿는 믿음 때문에 당하는 아픔,슬픔,가난,괴로움,고통,고난,어려움은 하나님이 거기에서 다 아시고 잘했구나, 참으로 잘 감당했구나 하면서 이리 올라오너라. 여기 좋은 자리에 앉아라, 하고 인정해 주신다. 그것을 우리는 바라고 믿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가 예수 때문에 당하는 어려움, 가난, 그런대로 괜찮다. 나만 겪는 것이 아니기에 외롭지 않다. 동지가 있다. 그것도 적지 않고 셀 수 없이 많다. 비록 지금, 이곳에서는 초라하고 보잘 것 없고 별 볼일 없이 보일지라도 분명 하나님이 역전시켜 주실 날이 있다. 그날을 우리는 바라본다. 그날이 있기에 우리는 오늘을 덤덤하게 묵묵하게 감당하고 살아가는 것이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이다. 예수를 만난 자의 모습이다. 그런 자가 다 되어 보지 않으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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