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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하는 것 고병국 2020-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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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1-11“여전히 하는 것?”

인사합시다. 축복합니다.

여는 말

할렐루야. 온라인 예배드리는 성도 여러분. 축복합니다. 하루빨리 코로나 19’ 바이러스가 소강상태가 되어 일상으로 돌아왔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시제는 경칩이 지나 이 왔건만, 우리들의 마음과 삶는 아직도 웅크리고 있는 겨울과 같다. 무엇보다 여기저기에서 들리는 경제적인 고통호소는 참 듣고 보는 사람들의 마음을 우울하게 한다. ‘코로나 19’의 여파는 엄청나다.

미국의 강철왕은 카네기이다. 그의 사무실 한 벽면에는 커다란 그림하나가 일생동안 걸려있었다고 한다. 그 그림은 이렇다. 사진으로 보면 금방 알 수 있는데,설명을 하자니 그렇다. “지평선 너머는 먹구름이 끼어 어두침침하고, 바닥은 언제 물이 있었는가 싶을 만큼 건조한 모래바닥에, 나무로 만든 목선하나가 비스듬히 누워있다. 바람이 불면 갈수 있는 도 없이, 공중을 향해 높다란 막대기 하나가 세워졌다. 배를 젓는 가 모래사장에 던져 있는 것으로, 절망스럽고 처절하게까지 보이는 그림이다”. 그런데 그 그림 밑에는 글귀가 쓰여 있다. ‘반드시 밀물 때가 온다.이다.

 

어떤 사람이 카네기에게 당신은 왜, 이 그림을 그렇게 사랑하느냐?’고 물었다. 그의 대답은 청년시절에 세일즈맨으로 이집 저 집을 방문하면서 물건을 팔았는데, 어느 노인 집에서 이 그림을 보았다. 그림이 퍽 인상적이었고, 특히 반드시 밀물 때가 온다.‘라는 글귀가 가슴을 울렸다. 28세 되던 해 그 노인을 찾아가 할아버지께서 세상을 떠나실 때, 이 그림을 저에게 주십시오.‘하고 부탁을 했다. 노인은 허락했고, 노인이 돌아간 후 자기 사무실에 걸어 놓고, 늘 그림을 보면서 고난을 이겼다. 그래서 마침내 강철 왕이 되었다. 미국 전역에 2500 개 공공도서관 건립,카네게공과대학,카네기교육진흥재단 등 그의 이름으로 된 것들이 많다.

 

코로나 19’로 우리는 지금 마치 썰물처럼 우울하고 힘든 시기를 지나는 것 같다.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코로나 19’도 머지않은 날 우리들의 뉴스거리에서 사라지는 때가 오리라고 본다. 마치 사스’ ‘메르스’ ‘신종플루처럼 말이다. 잠시 힘든 시기, 갑자기 찾아온 썰물이라 생각하고 조금 후면 밀물은 반드시 온다.’라는 믿음으로 오늘 현실을 지혜롭게 이겨나가기를 바란다.

 

본문 이야기

시편42편 부제가 나온다. ‘고라자손의 마스길이라 했다. ‘마스길교훈이다. 즉 고라 자손의 교훈이라는 것이다. 성경에 고라 자손은 레위지파의 후손이다. 아론의 자손이 아니기에 제사장은 아니다. 그들은 주로 회막 문에서 찬송을 하는 사람들이다.(대상6:31-39)그런데 그런 고라 자손 중 어떤 사람이 자신의 지금 처한 상황, 심경을 시로 썼다, 그것이 본시42편이다. 시편의 분류는 감사시, 탄원시, 찬양시 등으로 분류한다. 본시는 일종의 탄원 시이다. 자신의 처지를 안타까워하면서 쓴 시가 된다.

 

그러면 그가 처한 형편은 어떤가? 먼저 그는 하나님의 성전과는 거리가 멀리 떨어져 있는 곳에서 지내는 것 같다. 그런 그를 주변의 사람들이 조롱을 한다. 너는 어찌하여 이렇게 하나님의 성전에서 찬양을 하던 자가 왜 이렇게 멀리 나와 있느냐? 너 혹시 하나님으로부터 팽 당한 것 아니냐? 너 하나님으로부터 무슨 문제가 있었던 것 아니냐? 너의 모습 꼴 참 좋다. 그래 회막 문에서 찬양을 하던 사람의 꼴이 이게 뭐냐?

 

이런 비방과 조롱은 시인에게는 너무나 힘든 고통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 고통은 육체적인 고통만 있는 것이 아니다. 정신적인 고통도 있고, 영적인 고통도 있다. 지금 저자에게 당한 고통과 어려움은 너무 힘든 것이다. 그의 입으로 고백한 것을 한번 보자.“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다고 한다.무슨 말인가? 눈물이 가려서 밥을 못 먹을 정도이거나, 눈물이 음식이다 고 한다. 이 한마디가 그의 심정을 짐작하고도 남게 만든다. 얼마나 힘들고 어려웠으면? 그랬을까.

 

그런 그가 범상치 않는 고백을 한다.

보통은 사람들이 정신적이든, 육체적이든 힘들고 어려우면 어떻게 하는가? 우리는 흔히 힘들어 못살겠다. 힘들어 죽겠네. 한다. 그렇다 이것이 일반적이다. 고라 자손 중 한 사람인 시편저자도 그래야 정상이다. 그런데 그에게 정상이 아닌 비정상의 표현을 발견한다. 뭐라고 표현하는가?

 

본문 두 군데에 나온다.“여전히 찬송하리로다”(5.11) 지금 이 같은 상황인데 찬송이 나오는가? 아니 눈물로 밥을 먹듯 주야로 울고 싶은 상황인데 어떻게 여전히 찬송을 할 수 있겠는가? 찬송은 언제 하는가? 보통은 기쁘고 즐거울 때 한다. 그래서 기분이 좋을 때 흥얼거리는 것이 콧노래, 찬송이 아닌가? 그런데 저자는 분명 주야로 눈물로 인해 힘이 든다고 하는데, 찬송을 한다니 이해가 안 된다.

 

여기 나오는 여전히는 개혁성경 버전은 오히려이다. 다른 성경을 보니또 다시이다. 이를 종합해 보면 지금 저자인 시인은 찬송을 부를 형편이 아니다. 상황이 아니다. 조건이 아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나는 찬송한다. 찬양을 하련다. 이다. 아무런 일이 없는 것처럼 태연하게 찬양하겠다. 아무런 일이 없는 것처럼 여전히 하던 일을 하겠다. 전에 회막 문에서 찬양을 하는 사람처럼 여전히. 오히려, 또 다시 찬송을 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을 가끔은 본다. 나는 저 사람 같으면 도저히 살 수 없겠는데, 저는 아무런 일이 없는 것처럼 태연하게 있다면, 우리는 두 가지 이야기를 한다. 하나는 감각이 둔한 자가 아닌가? 아니면 그 만의 무슨 비법이 있는 것인가? 궁금해진다.

지금 저자가 그렇다. 그 비법이 궁금해진다.

 

비법은 있었다.

그가 그렇게 태연하게 찬송을 할 수 있었던 비법은 다름 아닌, 과거에 회막 문에서 찬양을 하면서 살았던 경험, 체험이다. 하나님을 만남이다. 그것이 때로는 나를 힘들게 하고 낙심케 하는 요소들이 많이 있더라도, 나를 힘들고 어려운 가운데서도 이기게 하시고 찬송하게 하는 원동력이었다. 일종의 은혜를 받았던 경험이다.

이런 경험이 그로 하여금 힘들고 어렵더라도 찬송하게 하는 요소였다.

 

우리들 이야기

1.우리들에게도 힘들고 어려운 일은 있다.

사람이 인생을 살아가는데 닥치는 상황은 한 둘이 아니다. 어쩌면 인간의 삶이란 맑고 화창한 날도 많겠지만 우중충하고 찌프듯한 날들이 더 많은지 모른다. 그런 요소들은 여러 가지이다. 혹자는 경제적일 수 있고, 건강일수도 있고, 관계적일수도 있다. 그러면 보통은 낙심을 한다. 더 심하면 좌절을 하거나 포기한다. 인생의 삶을 포기하거나, 신앙을 포기하는 자도 보았다.

 

여러분은 어떤가? 힘들고 어려울 때를 만나면 여러분은 어떤가? 부정적인가? 희망적인가? 혼자서 고민을 다 짊어지고 살아가는 자는 혹시 아닌가?

 

2.여전히 하는 것이 무엇인가?

아마추어하고 프로 하고는 차이가 있다. 아마추어는 하기 싫으면 때려치운다. 그러나 프로는 아니다. 하기 싫어도 해야 하는 것이 프로이다.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보고 싶은 것은 아마추어 같은 모습이 아니라. 프로 같은 모습이다. 무슨 말인가? 하기 싫어도 별로 마음에 안 들어도, 그것이 마땅하니까. 그것이 당연하니까. 그냥 하는 것이다.

 

)크리스챤연합신문에 칼럼을 기고한지도 벌써 10여년 된다. 요즘은 한 달에 두 편을 쓴다. 그런데 때로는 글감이 떠오르지 않아 고민을 한다. 마감 시간은 점점 다가오는데, 무엇을 쓸까? 정리가 되지 않거나 구도가 안 나오면 입술이 탄다. 그럴 때는 순간 이런 생각을 한다. ‘이제 그만 쓰겠다고 해야겠다. 귀찮고 힘들어 못쓰겠다고 푸념한다. 그러다가도 그 고비를 넘기면 그냥 일상처럼 밥 먹듯, 두 주에 한편씩 글감 찾고 구도 찾고 그냥 써내려간다. 좀 힘이 들고 낑낑거려도 말이다. 그때 드는 생각이 이제는 준 프로가 되었구나한다. 내 이름으로 나가는 코너이기에 그렇다. 힘들어도 여전히 쓴다.

 

그렇다. 여러분이 힘들고 낙심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났는데도, 여전히 하는 것이 무엇인가? ‘프로는 그것이 있다. 그것이 신앙과 관계가 있는가?

 

1)마땅히 보여줄 것, 찬송이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자녀에게 보고 싶은 요소가 여러 가지가 있다. 그러나 우리가 마땅히 하나님께 보여주어야 할 것은 찬송이다. 감사이다.

찬송과 감사는 함께 간다, 마치 두 수례바퀴와 같다. 감사하니 찬송을 하거나, 찬송을 하다 보니 감사가 나온다. 그리고 이런 모습이 우리가 하나님께 보여 드릴 수 있는 최상의 모습이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욥이다. 욥이 처한 상황은 말로 형연하기 어렵다. 그런데 그런 욥의 입에서 나오는 고백이 소스라치게 놀랍다.(1:21-22)“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아니하니라

 

우리가 하나님께 보여줄 수 있는 이것은 마치 마중물과 같다.

마중물을 아는가? 어릴 때 초등4-5학년 때 집에서 부엌에 물을 길러 채우는 것은 내 담당이었다. 우리 집에는 우물이 없어 이웃집에 가서 우물을 길러다 항아리에 채워야 했다. 이웃집의 우물은 두레박으로 푸는 우물이 아니라, 펌프질을 해야 하는 우물이었다. 그래서 항상 우물곁에는 물을 담아두는 항아리가 있었다. 바가지로 두 바가지를 담아 펌프우물에 넣고 펌프질을 하면 물이 잘 올라온다. 이때 사용하는 물을 마중물이라 한다.

이 마중물이 없으면 아무리 지하에 물 저장량이 많아도, 길러 올릴 수가 없다. 그러나 마중물 두 바가지만 있으면 물은 계속해서 올라온다. 물지게로 물을 많이 길렀다. 지금도 아련한 기억이 남는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고 싶은 것은 마중물이다. 분명히 현실은 어렵고 힘이 드는데, 콧노래를 부르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룰룰랄랄 하고 감사하는 모습을 보신다면, 우리에게 얼마든지 좋은 것을 주시고 싶으실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것을 잘 못한다.이것이 한계이다. 대부분은 그렇다. 그러나 하나님을 만난 자는 이것을 할 수 있다. 마중물이 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여전히 가 가능하다. 현실이 노래할 수 없고, 감사할 수 없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의도적으로 아무런 일이 없는 것처럼 태연하게 찬양하는 삶을 살아간다.

 

2)하나님의 심정을 기억하라.

상식적으로 생각을 해도, 힘들고 어려운데도 뭐가 그리 좋은지 항상 입술로 하나님 운운하고 찬송을 하며 아무런 일이 없는 것처럼 태연하게 전에 은혜 받았던 때처럼, 하나님을 만났던 것처럼 여전히 하던 일, 찬송과 감사를 하는 모습을 본다면 하나님의 심정이 어떠하겠는가? 복주고 싶은 심정이 아닐까? 이것은 인지상정이다. 우리가 하나님께 이것 한 가지만이라도 보여줄 수 있다면 하나님은 얼마든지 우리에게 복의 문을 열고 하나님의 때가 되면 축복해 주실 줄 믿는다. 이것이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시다.

 

3)하던 일을 멈추지 말라.

뭐든지 잠간은 할 수 있다. 그러나 오래 동안은 힘들다. 하던 일이 있는가? 멈추지 말라. 응답이 올 때까지, 한번 해보라. 시도해 보라. 미련하다시피 해 보라.

 

여전히 하던 일을 만들어라. 그것이 찬송인가? 감사인가? 기도인가? 성경읽기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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