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천 규빗
- 고병국 2018.8.26 조회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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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3:1-6“이천 규빗”
인사합시다. 축복합니다.
■본문이야기
이스라엘백성들이 애굽을 탈출하고 광야 40년을 은혜가운데 잘 통과하고 어느덧 요단강 동편, 지금의 요르단까지 왔다. 그 사이 지도자가 모세에서 여호수아로 바뀌었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어진 숙제는, 가나안을 정복하여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땅을 차지해야 한다. 그들은 그래서 모압 평지에 집결하여 전열을 다시 정비하고 장고의 길을 떠나려고 한다. 그때 지도자인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을 들어가는데 필요한 여러 가지 준비사항, 주의 사항 등을 고지를 한다. 그리고는 이제 출발신호를 하면 대 이동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 수가 작지 않다. 200만 명 정도가 된다. 가장 먼저 그들에게 넘어가야 할 관문은 요단강이다. 그 요단강이 그렇다. 평시에는 그냥 건너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홍수가 나는 시기는 상황이 다르다. 건널 수 없다.
그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여호수아가 지시한 매뉴얼을 보면 맨 앞에 하나님의 법궤, 언약궤를 맨 제사장들이 가고, 일종의 선발대이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본대가 뒤를 따라 간다. 그런데 본문에 보면 하나님의 언약궤를 매고 가는 제사장들과 본대가 일정한 거리를 두고 떨어져 가라고 한다. 그 거리가 ‘이천 규빗’이라고 명시한다.
■왜, 이천 규빗 일까?
우리가 상식적으로 본다면 제사장들이 맨 법궤를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짝 따라가거나 ,떨어져도 조금 떨어져 가는 것이 맞다. 그런데 이천 규빗의 거리를 두고 따라가라고 한다. 이천 규빗은 그러면 어느 정도의 거리일까? 다른 성경을 보았다. “당신들이 이전에 가 보지 않았던 길을 가기 때문에, 제사장들이 당신들이 가는 길을 안내할 것이오. 그러나 당신들과 언약궤 사이는, 이천 보쯤의 거리를 띄우고, 그 궤에 가까이 가지 마시오."(새번역)
”이제 여러분은 전에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는 길을 가게 됩니다. 그래서 제사장들이 여러분을 인도할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법궤 뒤에 바싹 따라가지 말고 1킬로미터 정도의 간격을 유지해야 합니다."(현대인의 성경).
즉 ‘이천 규빗’은 약 1km이다. ‘1규빗’은 약 ‘45cm’이다. 다른 자료에는 900m 이다. 900m는 짧은 거리가 아니다. 여기에 대한 두 가지 자료를 보면 ①언약궤에 대한 경외심을 심어주기 위함 ② 온 백성으로 하여금 언약궤를 충분히 바라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참고적으로 ‘이천 규빗’은 레위인들을 위해서 성읍을 만들라고 할 때 그 규모를 동서남북 이천 규빗이었다. “성을 중앙에 두고 성 밖 동쪽으로 이천 규빗, 남쪽으로 이천 규빗, 서쪽으로 이천 규빗, 북쪽으로 이천 규빗을 측량할지니 이는 그들의 성읍의 들이며”(민35:5) 이스라엘백성들은 후대에 안식일에 다닐 수 있는 거리도 이천 규빗으로 제한을 두었다. 이를 종합적으로 보면 이천 규빗이란 무엇인가 인간이 근접하기 어려운 그 무엇이 있음을 인정하고 살아가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천 규빗은 무엇을 말하려 하는 것인가?
지금 이스라엘백성들이 가나안을 들어가는데 가장 먼저 정비를 하고 지켜야 할 규정을 말한다. 우리는 흔히 가나안을 하나님 나라, 천국으로 비유해서 말한다. 출 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을 향해 가는데, 힘든 광야생활도 거처야 하며, 요단강을 건너야 하는 과정도 통과해야 한다. 그래야 마지막에 가나안의 약속이 있다.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데 최종 목적지는 하나님나라, 천국이지만, 우리는 여전히 노정 중에 있다. 그러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것인가? 본문은 우리에게 그것을 말해 주는 것이다. 즉, 하나님을 믿는 우리가 목적지인 천국을 향해 가는데 어떻게 하고 살아가야 되는지를 말해 준다. 그것이 거리를 두고 살아가라는 것이다. 왜, 하나님의 언약궤, 법궤는 가까이 하거나 쉽게 접근할 수 없는 것이다.
거리를 두라. 는 일정한 간격을 두라 이다. 이는 시체 말로는 알맞게 조절을 하라는 것이다. 절제이다. 스스로 성결은 자발적 성결, 자발적 절제이다. 이는 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수위 조절하는 것이다.
■우리들 이야기
1.수위조절을 하고 있는가?
모든 것은 조절이 필요하다. 과하면 아니한 것 보다 못하다. 현대인들이 요즘 수위 조절하는 것 중 하나는 건강이다. 오래 건강하게 살아가려면 반드시 건강을 위해서 필수적으로 조절해야 하는 것들이 있다. 그것이 먹는 것이다. 다 먹을 수 있고 하지만 건강을 위해서 조절하는 것이다.
예)나는 선천적인지 모르지만 근 10여년 콩팥인 신장내과 의사를 정기적 만나 검사를 받고 처방을 받는다. 단백뇨가 있다고 해서 약을 먹는다. 코레스톨 수치가 높다고 해서 약을 먹는다. 그러면서 운동과 육류는 적게 먹고 채식을 주로 하라고 처방을 해 주었다. 그러나 먹는 것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지난 3주전에는 검사를 하러 갔더니, 식전 혈당과 식후 혈당을 재더니 수치가 조금 높다고 하면서 3개월 동안 수치를 조절하고 오라고 숙제를 내주었다. 3개월 후에 다시 공복혈당과 식후 혈당을 재서 높으면 당뇨 약을 먹어야 한다고 한다. 겁이 덜컥 났다. 운동을 3주째 하고 있다. 그러던 중 같은 모임에 목사님 한분이 요즘 저녁6시 이후부터 다음날 아침 8시 이전까지는 아무것도 먹지 않고 코레스톨 수치를 줄이는 숙제를 하고 있다고 한다. 1주일 만에 2kg줄었다고 한다. 원리는 공복이 밤에 지방을 태우는 작업을 한다. 는 것이다. 그런데 더 먹으면 그것은 고스란히 남는 잉여 지방이 되어 배가 나오고 인슐린이 정상적으로 작용 하지 못하기에 당뇨가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저녁시간에는 잘 안 먹는다.
건강을 위해서 이런 수위조절은 필수이다.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천국을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영적인 수위조절이 필요하다. 그래야 마지막에 목적지로 들어갈 수 있다. 그것을 성경은 뭐라고 하는가? 이천 규빗의 거리를 두고 따라 가라는 것이다.
2.영적 비만을 멀리하라.
육체의 비만이 무엇 때문에 생기는가? 선천적으로 체구가 크고 골격이 큰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은 먹는 것 때문에 생긴다. 처음 미국에 갔을 때 사람들을 보고 놀란 것은 비만한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비만은 이것 저것 가리지 않고 많이 먹을 때, 시도 때도 없이 먹을 때 생긴다. 영적비만을 우리가 경계해야 한다.
1)거룩을 연습하라.
사람이 살아가는 것은 길을 가는 것이다. 길이 무엇인가? 사람으로 마땅히 걸어가야 할 길이다. 그 길을 성경은 말한다. 하나님을 아는 것이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다. 이 세상에 아무리 부와 명예와 지위를 누리고 이루었다고 해도 결국 인간은 가야 할 곳은 하나이다. 오늘 저와 여러분이 가야 할 곳은 바로 하나의 길이다. 계시록에서는 그리로 들어가는 자라고 했다. (계21:27)”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뿐이라”. 그리로 들어가는 자는 곧 생명책에 기록된 자이다. 생명책에 기록된 자는 다름 아닌 (계7:3-4)” 가로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나 해하지 말라 하더라 내가 인 맞은 자의 수를 들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중에서 인 맞은 자들이 십사만 사천이니”. 예수를 구주로 믿는 모든 성도를 말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세상에서 아무리 잘살았다고 해도 막상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못되면 그는 결국 후회하고 이를 갈면서 고통의 날을 보내야 할 것이다.왜 둘째 사망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계20:12-15)”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사망과 음부도 불 못에 던지우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 못이라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 못에 던지우더라”.
곧 사람은 어떻게 살았느냐가 어떻게 죽느냐와 연결되어 있다. 그리로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은 잘 못 산 사람이지만 그리로 들어가는 사람은 비록 가난하고 이름도 없고 궁색하게 살았다고 하더라도 그가 잘 산 사람이다. 많은 신앙의 선배들이 이것을 터득했다. 그렇다면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그리로 들어가기를 힘쓰는 사람들의 삶의 모습은 어떠해야 하는가? 그것이 곧 성결한 삶이다. 거룩이다.
2)거룩의 유익을 체험하라.
기독교 역사상 성경다음으로 많이 읽혀진 고전이 있다. 그것은 『그리스도를 본받아』이다. 이 책은 그리스도인의 내면적 생활을 다루는 책이다. 한 마디 주제를 든다면 성결한 삶이다. 에이든 토저 목사는 “영적인 사람은 행복해지기 보다는 거룩해지는 것을 더 사모 한다”고 했다. 기독교 역사상 교회가 정한 7가지 죄라는 것이 있다. 첫째는 교만, 둘째는 질투, 셋째가 분노, 넷째가 탐심, 다섯째가 탐식, 여섯째가 게으름, 일곱째가 정욕이다. 이것을 교회에서는 될 수 있으면 버리라고 했다. 멀리하라고 했다.
신앙은 무엇인가? 영적인 투쟁이다. 육적인 것과의 전쟁이다. 영적으로 산다고 하는 것은 육적인 것을 멀리하는 것이다. 사람은 원래 육적은 욕망을 따라 살기를 좋아한다. 가만히 인간을 놓아두면 점점 인간은 영적인 것과는 멀어지고 육적인 것이 된다.
요즘처럼 물질풍요시대에는 점점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 청빈이기도 하다. 그러나 기독교의 영성은 청빈에서 나오기도 한다. 우리나라에 기독교가 전래 된지는 얼마 안 되었지만 지금까지 우리나라 기독교 인물 기운데 많은 사람들이 존경하는 사람 가운데 한분은 한경직 목사이다. 왜 큰 교회를 목회해서가 아니다. 종교인의 노벨상인 템플턴 상을 수상했기 때문도 아니다. 이유는 『아름다운 빈손 한경직』 제목처럼 그는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갔다. 우리나라 최고의 교회의 담임이었지만 갈 때는 정말 청빈한 삶 성결한 삶을 마지막에 살다간 어른이다. 그래서 그를 지금도 잊지 못하고 존경한다.
절제란 그리스도인이기 이전에 인간에게 필요한 덕목 중 하나이다.헬라인들은 사람이 지켜야 할 덕목이 4가지라고 했다. 그것은 지식, 용기, 정의, 절제이다. 당시의 어른들은 아테네 청년들에게 두 가지를 경고하였다. 첫째는 “네 자신을 알라”는 것이고 둘째는 “네 자신을 다스리라”는 것이었다. 자신을 다스린다는 것은 중요하다. 잘 다스리는 자가 인생에도 승리한다. 그런데 우리 인간은 스스로 다스릴 수 없다. 하나님이 우리를 다스리는 힘을 주셔야 한다. 그것은 곧 성령의 도우심이다. 성령의 도우심이 없이는 우리가 절제할 수도 없고 성결할 수도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항상 하나님께 구하자. 우리를 잘 다스릴 줄 아는 자와 성결하게 살아가는 자가 되게 힘을 달라고.
■ 거룩이 답이다.
강동지방에 가까이 지내는 목사님과 가끔 차도 마시고 함께 걷기 운동도 한다. 만나면 대화 주제는 점점 목회현장이 어렵고 힘든 시대에, 저성장 시대를 만나 작은 교회가 어떻게 하면 그나마 잘 헤쳐 나갈 수 있는가?이다. 그래서 몸부림을 함께 치기도 하고 건전한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목사님이 이렇게 말한다.“목사님 제 생각에는 요즘은 프로그램이나 다른 어느 것 보다 중요하게 생각 되는 것이 하나님과 나와의 깊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과 거룩 이다. ” 라는 말을 한다. 그러면서 ‘거룩이 답이다’ 고 자신 있게 말한다. 그래서 저도 대답하기를 맞다고, 거룩이 기적을 이루고 거룩이 하나님의 능력을 이루게 한다고. 사막교부들을 연구해 보면 그들은 한 평생 오로지 거룩을 위해서, 경건을 위해서 영적 수위조절을 한 사람들이라고. 우리가 생각하면 심할 정도로 절제를 하고 영적 수위조절에 온 몸을 불태운 사람들이라고.
그렇다. 거룩이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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