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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년 6월] 추천도서
운영자 2009-06-28 추천 0 댓글 0 조회 464

책소개

  • 성령님을 붙들어 고난을 돌파하라!

    마른 뼈도 다시 살아나게 하는 전병욱 목사의 '유앙겔리온북스' 시리즈, 제3권 『돌파력』.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불황이나 범죄로 인해 어지럽고 고통스럽다. 그리스도인이라고 할지라도 현실은 막막할 뿐이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에게는 현실의 고난을 돌파하는 굳센 믿음과 능력이 있다.

    이 책은 신약성경 '로마서' 8장부터 10장까지를 중점적으로 살펴본다. 하나님의 영광의 말씀으로 어루만져주시는 성령님을 의지함으로써 고난을 돌파하고 승리하도록 도전하고 있다. 특히 그리스도인의 돌파력의 핵심은 바로 성령의 능력에 있으므로, 그분을 붙든다면 미래의 꿈을 품고 나아갈 수 있음을 일깨워준다.

    저자는 편안함만 추구하는 우리에게 고난을 돌파하여 진정한 승리의 삶을 살게 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그들이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절히 바랄 때 주어지는 은혜로 고난을 돌파했음을 보여준다. 고난과 맞닥뜨려 어쩔 줄 모르는 우리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다.

출판사서평

  • 자신을 의지하면 할 수 없다
    성령님만을 의지하면 그분이 이루신다
    아무리 단단하고 어렵고 꼼짝 안 할 것 같은 벽이라도
    성령님이 힘 주시면 쳐서 깨뜨려 뚫고 나아갈 수 있다
    현실을 돌파하여 승리하게 하는 전병욱 목사의 유앙겔리온북스 3


    성령님을 의지하라

    성령님은 두려움으로 굳어진 나의 마음을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의 말씀으로 어루만져주신다.
    믿음의 시합에서 얼어붙지 않고 적군을 돌파하여 승리하게 하신다.


    나는 뻔하지 않은 인생을 살아간다

    사람들은 답답한 일을 당하면 낙심한다. 그러나 나는 낙심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거꾸러뜨림을 당하면 망한다. 그러나 나는 망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영이 나를 호위해주시기 때문이다!


    단 하루를 살더라도 믿음으로 살라

    나에게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고 숫자도 아니다.
    날수도 아니다. 단 하루를 살더라도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
    단 한 가지 일을 한다 할지라도 믿음으로 해야 한다.
    단 한 번의 예배를 드린다 할지라도 제대로 드려야 한다.
    그때 내 삶에서 돌파력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 서평 ]

    크리스천이라면 누구나 현실의 난관을 돌파하는 굳센 믿음과 능력을 가질 수 있을까? 답은 ‘그렇다’이다! 단, 성령님의 이끌림을 받아, 그 영의 능력을 따라 사는 거듭난 크리스천일 경우이다. 불도저가 바위산을 뚫고 나아가듯, 성령님이 주신 돌파력을 지닌 크리스천에게는 작금의 거친 현실도 두려움의 대상이 전혀 아니다.
    로마서를 중심으로 한 유앙겔리온(복음)북스 시리즈(1《생명력》, 2《집중력》)를 집필해온 삼일교회 전병욱 목사는 제3권인 《돌파력》을 통해 크리스천들의 돌파 능력의 핵심이 부활의 영, 곧 성령의 능력에 있음을 역설한다.
    저자는 역경이 인물을 만들어낸 사례를 통해, 역경이 파괴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라고 전제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본질적으로 역경을 싫어한다. 편안함이 세상 우상의 본질이다. 그러나 저자는 생명은 편안하면 썩게 된다는 사실을 환기시킨다. 그러므로 역경을 돌파해가는 과정을 믿음 안에서 즐기라고 저자는 권한다. 모든 고난에는 유익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고난의 역경을 돌파할 수 있는 능력은 인간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절히 바랄 때 은혜로 주어진다.
    취업난과 각종 경제난 등 돌파해야 할 역경이 특히 많은 이 시대에, 복음에 근거해 멀리 바라보는 시선, 즉 믿음을 가지라고 이 책은 말한다. 예수님을 바라보고 문제 앞으로 돌진하는 사람은 돌파력을 발휘할 수 있으며, 그런 사람은 자기 앞에 어떤 장애가 있다 할지라도 그것을 뚫고 나갈 수 있다. 그런데 우리가 예수님을 바라볼 수 있도록 하시는 분은 바로 성령님이시니 그분을 붙들라고 이 책은 강조한다.
    이 책은 현실의 두터운 장벽 앞에서 어쩔 줄 모르는 사람들에게 믿음의 시각을 줄 뿐 아니라, 잃어버린 능력을 회복함으로써 현실을 돌파하고 미래의 꿈을 품고 나아가는 길을 제시해줄 것이다.


    [ 프롤로그 ]

    역경을 돌파해가는 과정을 믿음으로 즐기라!

    제네바의 피에르 렌치니크 박사는 〈고아가 세계를 주도한다〉라는 글을 발표했다. 이 글에서 그는 인류 역사에 가장 큰 기여를 한 사람 300여 명을 분석해보니 고아가 많았다고 말했다. 그러고 보면, 알렉산더, 시저, 루이 14세, 조지 워싱턴, 나폴레옹, 사르트르, 루소, 데카르트, 파스칼, 공자 등이 모두 고아였다. 이스라엘 최초의 여성 총리이자 이스라엘 건국의 어머니로 불리는 골다 메이어도 고아였다. 우리 믿음의 선배인 모세와 사무엘도 친부모 슬하에서 자라지 못했다.
    어린아이의 삶에서 부모의 상실만큼 큰 시련이 어디 있는가? 그런데도 고아가 세계를 주도한다니 놀랍지 않은가! 이 놀라운 발견은 부모가 필요 없음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다. 역경이 인물을 만들어낸다는 뜻이다. 역경을 돌파해가면서 얻게 되는 힘이 있다는 것이다.
    비슷한 의미로 스위스의 의사이자 정신의학자인 폴 투르니에는 이렇게 말했다.
    “슬픔이 크면 클수록 그 슬픔이 만들어내는 창조적 에너지는 더 크다.”
    그렇다. 역경은 파괴적이기만 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창조적인 힘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역경에는 유익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역경을 싫어한다. 우리는 편안함만을 추구한다. 이 세상 모든 우상의 본질이 무엇인가? ‘편안함’이다. 편안함은 우리의 생명력을 잃게 한다. 중년 남자들을 보라. 거의 다 배가 나왔다. 왜 그러한가? 걷지 않아서 그렇다. 그들은 짧은 거리를 이동할 때도 편하게 자동차를 타고 간다. 그렇게 걷지 않고 편안함만 추구하다보니 온갖 성인병이 생기기 십상이다.
    생명은 편안하면 썩는다. 오히려 역경이 있을 때 그것을 돌파해가면서 생명력이 충만해진다. 그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역경을 주시는 것이다. 역경을 돌파해가는 과정을 즐기라. 고난이 주는 유익을 충분히 누리라. 역경 가운데 도우시는 성령님의 힘으로 일어서라.


    결국 고난은 돌파되고, 우리는 찬송한다

    고난에는 어떤 유익이 있는가? 시편 42편 기자는 고난 가운데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하나님께 이렇게 부르짖었다.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생존하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 앞에 뵈올꼬”(시 42:1,2).
    이 시편 기자는 자신을 사슴과 동일시했다. 사슴은 식도가 셀로판지처럼 얇다고 한다. 그런데 사슴이 목이 타게 되면 식도가 들러붙어서 절대 떨어지지 않아, 결국 죽게 된다고 한다.
    목이 타서 죽음 직전에 몰린 사슴은 간절하게 시냇물을 찾는다. 하지만 사슴의 필요를 채워줄 수 있는 시냇가는 온갖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곳이다. 시냇가에는 약한 동물만 오는 것이 아니다. 맹수들도 길목을 지키고 있다. 그래서 사슴이 물을 마시러 시냇가에 가는 행위는 목숨을 건 일이다.
    사슴에게는 필요를 채워야 한다는 절박함이 있다. 그런데 그러기 위해서는 목숨이 위험한 자리로 가야 한다. 이 사실 때문에 사슴은 너무나 안타깝다. 이 사슴과 같은 심정이 바로 이 시편 기자의 심정이다. 고난을 돌파해야 살 수 있다는 것은 아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이때 그는 무엇을 해야 하겠는가?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그 얼굴의 도우심을 인하여 내가 오히려 찬송하리로다”(시 42:5).
    그는 하나님을 바랐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를 도우시므로 그는 오히려 찬송하게 되었다.
    고난은 하나님을 바라게 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경험하게 한다. 그래서 결국 고난은 돌파된다. 그리하여 우리는 하나님을 찬송하게 된다.


    조급함을 버려라

    현재는 돌파해야 할 위기의 시대이다. 그런데 이런 때일수록 조급함을 버려야 한다. 조급함은 천박함을 낳는다.
    요즘 젊은이들은 취업난 때문에 힘들다. 그래서 대개 대학생활 동안 ‘스펙’(specification, 구직에 필요한 외적 조건을 가리키는 신조어) 만드는 데만 총력을 기울인다. 그들은 좋은 학점을 얻기 위해 발버둥 친다. 높은 토익 점수를 얻기 위해 애쓰고, 어학연수를 떠난다. 각종 자격증 시험을 준비한다. 그러나 짧은 시간에 이 모든 것을 잘하려니 피상적이 될 수밖에 없다. 조급하게 준비하려니 내공이 없다. 깊이가 없다. 열심히 사는데 풀리는 게 없다. 치열하게 준비하는데 응용력이 없다.
    최근 교육의 문제 가운데 하나가 ‘인문학의 부재’이다. 학생들 가운데 문사철(문학, 역사, 철학)을 넘나드는 지식을 갖춘 사람이 드물다. 조급하게 취업난을 돌파하려니 고전을 깊이 있게 섭렵할 수가 없다. 고전을 간단하게 요약해놓은 것이나 보면서 스토리 정도만 파악한다. 그러니 깊이가 있을 수 없다.
    목회자들도 마찬가지다. 조급하게 빠른 부흥을 원하니까 인스턴트 사역자가 된다. 급하게 일하려니까 깊이가 없다.
    내가 아는 목회자들 가운데, 만나면 처음부터 끝까지 목회 이야기만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목회 외에는 아는 것이 없고, 관심도 없다. 교양이 없다. 드라마에 대해서도, 스포츠에 대해서도, 쇼핑에 대해서도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 교양이다. 교양이란 ‘다른 것이 있음을 아는 것’이다. 자기 전공 분야 말고, 다른 것이 존재함을 아는 것이다.
    목회자들이 대하는 성도들은 참으로 다양하지 않은가? 그들의 삶을 이해하고, 그들과 대화를 나누고, 그들의 문제를 함께 돌파해가려면 목회자에게 교양이 있어야 하지 않는가? 그런데 목회자들이 조급함 때문에 교양을 쌓지 못한다.
    조급함으로 배우자를 찾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빨리 자신의 결혼 문제를 돌파하려고 한다. 어떤 형제는 시한을 정해놓고 그 안에 반드시 결혼하겠다고 말한다. 어떤 자매도 몇 년 몇 월까지 만나는 남자 중에서 골라서 결혼하겠다고 공언한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충고하고 싶다.
    “외로운가? 그러면 외롭게 지내라. 좀 외롭다고 죽지 않는다.”
    무슨 말인가? 좋은 남자, 좋은 여자를 만날 때까지 기다리라는 말이다. 조급하게 아무에게나 가지 말라. 가짜에게 가지 말라. 그것은 정말 경솔한 일이다. 하나님께서 이유 없이 외로움을 주시겠는가? 외로움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니까, 외로움의 자리로 이끄신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해서라도 빨리 외로움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친다. 그러다가 진짜 줄을 붙잡는 것이 아니라 가짜 줄을 붙잡을 때가 많다.
    또한 성경을 읽다가 맞닥뜨리게 된 의문점을 조급하게 돌파하려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그렇게 억지로 풀다가는 잘못된 사상에 빠지기 십상이다.
    “또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벧후 3:16).
    성경의 모든 구절을 곧장 해석해야 하는가? 조급함을 버리고 성령님을 의지하라.
    “먼저 알 것은 경(經)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벧후 1:20,21).


    긴 시선을 가지고 돌파하라

    고난을 돌파하기 위해서는 긴 시선을 가져야 한다. 눈앞의 문제를 볼 것이 아니라 우리 인생의 최종 목적지를 바라봐야 한다. 거기에서 돌파력이 나온다.
    짧은 안목을 가진 사람은 눈앞에 있는 것만 본다. 그런 사람은 제자리 멀리뛰기 하는 식의 인생을 산다. 제자리에서 뛰어서는 2미터를 넘기 어렵다. 반면 긴 안목을 가진 사람은 눈앞의 문제 너머에 있는 예수님을 바라본다. 이런 사람은 도움닫기를 하고 멀리 뛰는 것과 마찬가지인 인생을 산다. 도움닫기를 하면 제자리에서 뛸 때에 비해 몇 배 이상을 뛸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달리는 기관차는 엄청난 두께의 콘크리트 벽을 뚫을 수 있지만, 전시된 기관차는 2센티미터 정도의 합판으로도 가로막힌다는 말도 있다. 어떤 사물이든 운동력이 있으면 강하다. 달려오던 속도로 돌파력을 발휘한다.
    멀리 바라보는 긴 시선은 중요하다. 길게 바라보면서 문제 앞으로 달려 나가면 돌파력을 발휘할 수 있다.
    하나님은 고난의 유익을 누리라고 우리를 광야로 이끄신다. 고난의 광야에서 우리는 강하게 단련받는다. 이때 우리는 멀리 바라보는 긴 시선을 가져야 한다. 이 시선은 곧 믿음이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히 11:1).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와 다윗과 사무엘과 및 선지자들의 일을 말하려면 내게 시간이 부족하리로다 저희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義)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 전쟁에 용맹되어 이방 사람들의 진(陣)을 물리치기도 하며”(히 11:32-34).
    “믿음의 주(主)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히 12:2).
    예수님을 바라보고 문제 앞으로 돌진하는 사람은 돌파력을 발휘할 수 있다. 그런 사람은 자기 앞에 어떤 장애가 있다 할지라도 그것을 뚫고 나간다. 그런데 우리가 예수님을 바라볼 수 있도록 하시는 분은 누구신가? 바로 성령님이시다. 성령님이 주시는 돌파력으로 눈앞에 있는 난제를 뚫고 달려 나가는 승리자가 되자.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빌 3:14).

    전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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