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직으로 아는 자
교회를 다니는 성도가 교회 안에서만 경건하고 천사표이고 교회 밖을 떠나서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된다면 분명 문제가 있다. 어쩌면 교회 안보다는 교회를 떠나 세상 속에서 가정과 직장 속에서 그리스도의 냄새와 향기를 풍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일도 그렇다. 교회 안에서의 일만 거룩하고 신령한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손으로 하는 일도, 지금 나는 하나님의 일을 하는 심정으로 맡은 일을 최선을 다하여 해야만 하는 것이다. 어떤 책을 읽다가 나온 이야기가 생각난다.
교황으로부터 성자라는 칭호를 받는 사람이 있었다. 어떤 수도자가 그를 물어물어 찾아갔다. 수도자는 성자라는 사람을 만났는데 깜짝 놀랐다. 성자라고 칭함을 받은 사람은 기도 중이거나 금식 중이 아니라 길거리에서 구두를 수선하는 사람이었다. 수도자는 이상하게 생각되어 성자라는 칭호를 받는 사람에게 물었다. ‘당신이 성자가 된 비결이 무엇인가?’ 그의 대답은 이렇다. ‘나도 잘 모른다. 다만 내가 한 것이라곤 구두를 수선한 것 밖에 없다. 나는 손님들이 구두를 맡기고 가면 그 구두가 예수님의 구두라고 생각하며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그 구두를 수선한다. 그 외에는 다른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 그런데 나를 성자라고 부르더라.’ 이었다.
우리는 때때로 교회 일을 할 때는 귀한 일이라 생각하고 정성을 다하지만 다른 일을 할 때는 천하고 가치 없는 일이라 여기고 아무렇게나 해버리는 경우가 있다. 우리가 하찮다고 생각하는 그 천한 일들이 남을 살리는 일이 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는 일들은 그것이 무엇이든 성실하게 최선을 다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어떤 사람이 교회에서 유급으로 일을 하다가 사정상 교회 일을 그만두고 어떤 곳에 취업이 되어서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는 항상 마음속에 세상일을 하고 있어서 죄송하다고 하면서 세상직업을 마치 잘못된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모든 사람이 다 신학을 가서 목회를 한다면 그것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오히려 하나님은 우리가 세상일 신령한 일 따로 구분이 없이 내게 주어진 일감을 하나님이 내게 주신 천직이라고 생각하면서 최선을 다한다면 그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아닐까? 종교개혁가 중에 칼빈은 성도들은 어떤 일을 하던지 그것이 하나님이 내게 주신 직업으로 생각하고 천직으로 최선을 다하라고 했다. 누가 성자인가? 종교적인 냄새가 물씬 풍겨야만 되는가? 그것도 중요하지만 내게 주어진 일터에서 천직으로 삼고 묵묵히 일하는 그리스도인이 아닐까?
요즘 교회에서 점점 종교인을 기르는 것 같아 마음이 안타깝다. 종교인은 많아도 예수 정신을 가지고 현실에서 최선을 다해 성실하게 사는 사람들이 적다면 기독교의 역량은 보잘 것 없을 것이다. 우리는 어떤가? 생각을 해 보자. 진정 종교인에 불과한지, 아니면 예수의 정신을 가지고 삶의 자리에서 이것을 주님이 내게 맡겨 주신 것이라고 하는 철저한 직업관과 소명의식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지 묻고 싶다. “종들아 모든 일에 육신의 상전들에게 순종하되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와 같이 눈가림만 하지 말고 오직 주를 두려워하여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골3:22-23) 일을 하는데 사람 눈을 가리는 것은 쉽다. 보이는 데서만 일을 하는 척하면 된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하는 일은 다르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는 일이거나 지금 맡고 있는 것들이 하나님이 나에게 맡겨주신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면 최선을 다해서 일하고 예수님의 마음가짐으로 임할 것이다. 너도 나도 구두 수선공처럼 묵묵히 맡은 일을 하나님이 주신 일로 생각하고 열심을 내며 성실하게 살아가자. 그러면 반드시 영광된 날이 오리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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