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단하지 말라
스케테의 한 수도자가 하루는 어떤 잘못을 범했다. 원로들은 회의를 열어 모세 교부가 오도록 사람을 보냈다. 그러나 그는 거절했다. 그리하여 사제가 누군가에게 책임지고 가서 이렇게 말하도록 했다.“오십시오, 모든 수도자들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으니까요”.그는 일어서더니 구멍 난 바구니에 모래를 가득 채워 그걸 등에 지고 갔다. 그를 마중 나온 수도자들이 “그게 뭡니까, 사부님?”하고 물으니까 그는 대답하기를 “내가 지은 죄들이 등 뒤에서 새어나오고 있는데, 나는 볼 수가 없거든, 그런 내가 오늘, 다른 사람의 죄를 심판하러 이렇게 오고 있는 중이렸다?” 했다. 그 말을 듣고 수도자들은 더 이상 아무 말도 못 꺼냈고, 잘못을 범한 수사를 용서해 주었다. 이 글은 사막 교부들의 금언집에 나오는 내용이다.
사람은 나름대로 생각을 하고 정의를 내리고 판단 기준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래서 내 생각에는 옳고 그름을 세워 놓고 산다. 그런 판단 기준은 다분히 주관적이기 쉽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경험, 지식, 상식으로 판단해서 다른 사람과 사물을 판단하게 되어 있다. 객관적인 판단을 내리기란 쉽지 않다. 혹여 우리가 객관적인 판단을 내린다고 한다면 그것은 성경이 기준이 되어야 할 것이다.
성경이 기준이 된다면, 성경에는 모든 인간은 죄 가운데 살다가 죄 가운데 죽을 수 밖에 없는 사람이라고 했다. 즉 인간은 죄인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을 판단한다는 것은 죄인이 죄인을 판단하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성경에는 판단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다른 사람을 판단하지 말라고 한다.“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마7:1-5).
남의 떡이 더 맛있게 보인다고 하는 말이 있다.객관성을 잃기 쉽다는 것이다. 잘못이나 흠은 내 것 보다는 남의 것이 더 크게 눈에 보여 지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아무런 문제도 없는데 다른 사람의 잘못과 흠은 두드러지게 비춰지는 것이다. 이것이 문제이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될 수만 있으면 하지 말아야 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쉽게 판단을 하고 정죄를 한다.
우리가 또, 판단하는 것 중 하나는 설교이다.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것이다. 하나님 말씀을 선포하는 것에는 사실 판단을 해서는 안 된다. 설교를 판단하는 것은 못된 습관이 된다. 하나님 말씀 선포는 오로지 “말씀을 해 주십시오.내가 듣겠습니다” 이것만 있을 뿐이다. 우리가 설교를 들을 때 명심해야 할 것은 내가 이미 가지고 있는 신학. 경험, 지식, 상식 등을 버려야 한다. 왜냐면, 설교자는 설교자 나름대로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을 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을 전하는 데 무슨 판단이 있을 수 있는가?
똑같은 죄인인, 우리 인간들이 나으면 얼마나 더 낫겠고, 잘 나면 얼마나 더 잘 낫겠는가? 거기서 거기가 아닌가? 잘난 사람 없고, 못난 사람 없다고 하듯, 서로서로 남을 높이며, 자신을 겸허하게 돌아보아 살아야 한다. 예수님 앞에 모든 사람들은 죄인이라는 사실,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이 선하고 의롭다는 사실을 알고, 주님 앞에 겸손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것이 신앙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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