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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 전도자
고병국 2016-01-23 추천 1 댓글 0 조회 654

17.거리의 전도자

웨슬리가 부흥운동을 일으키던 당시 영국의 수도인 런던은 인구가 60만 명 이었다, 산업사회의 태동으로 지방과 농촌인구가 갑자기 도시로 유입되어 도로는 좁고 불량하였고, 주택공급은 턱없이 부족하고 형편없는 가난한 사람들은 점점 많아졌고 거리는 집 없는 사람들과 버려진 아이들, 일을 찾는 사람들로 붐볐다. 도시는 무질서하고 도덕은 무너져 강도와 절도 도둑이 극성을 부렸다. 런던은 소돔과 고모라 또는 니느웨와 바벨론 같은 타락한 도시를 닮아가고 있었다.

 

 흿 필드와 웨슬리형제가 일으킨 부흥운동의 중심지인 브리스톨도 런던과 마찬가지로 급변하는 상황이었다. 브리스톨은 주변에 주석과 석탄광산이 많았다. 영국 서남부의 항구도시이다. 당시 영국의 국교회들은 복음주의자들에게 강단을 내어주지 않고 접근을 금지하였다. 웨슬리도 모라비아교인들과 깊은 교제를 통해 확신의 교리와 회심의 체험을 설교함으로 복음주의자로 인식되어 1738년 말에는 영국 국교회의 강단에서 완전히 쫓겨나고 말았다. 복음주의자들을 열광주의자로 몰아붙이면서 비난을 하고 영국교회 교구 교회들은 그들에게 설교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

 

  그 무렵 웨슬리보다 나이는 11살 어린 제자인 휫 필드가 브리스톨과 킹스우드에서 야외설교를 시작하였다. 휫 필드는 자신에게 강단을 허락하지 않는 교회에 대항하여 킹스우드에서 탄광부들을 향해 옥외설교를 시작했다. 이 옥외설교는 영국 부흥운동을 일으키는 촉매가 되었다. 처음에는 200여명의 청중이 모였고, 다음에는 2,000명 그리고 나중에는 10,000명에서 20,000명의 청중이 모여 들었다.휫 필드는 미국 조지아에 고아원을 세우려고 하는 선교 사업을 벌여놓고 영국에서 부흥운동을 통해 필요한 자금을 모으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으나 청중은 많이 모였는데 모금이 잘 되지 않자 실망하였다.

 

 그래서 다른 지역으로 야외집회를 확대해서 모금을 다시 해, 미국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였다. 그러므로 자신의 뒤를 이어 브리스톨과 킹스우드에 부흥운동을 일으킬 후계자가 필요했다. 웨슬리가 적임자라 판단해 급히 불러 설득한다. 휫 필드로부터 여러 차례 브리스톨로 와서 옥외설교를 하라는 권면과 편지를 받았지만 웨슬리는 영국국교회 성직자로서 야외설교를 한다는 것이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쉽게 결정을 못 내렸다.

 

  그러던 웨슬리는 1739년 3월29일 목요일 런던을 떠나 브리스톨로 향하였다. 이날은 웨슬리의 생애를 전적으로 바꾸어 놓은 위대한 날이었다. 만약 그가 브리스톨에 가지 않았다면, 메도디스트 부흥 운동은 역사에서 일어나지 않았을런지 모른다.3월31일 토요일 저녁7시에 브리스톨에 도착하였다. 그는 휫 필드를 만났다. 휫 필드의 옥외설교를 이해하지 못했다. 웨슬리는 영혼을 구원하는 일을 교회 안에서 하지 않고 교회 밖에서 하는 것은 죄를 짓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다음날 주일아침에 휫 필드는 오전과 정오 오후에 세 번이나 설교시범을 보여 주면서 자기를 따라서 담대하게 설교할 것을 웨슬리에게 강권한다.

 

 웨슬리는 아직은 마음이 좀 내키지 않았지만 4월2일 월요일 오후 4시쯤 브리스톨 시 변두리에 위치한 공터에서 약 3,000명의 사람들에게 구원의 기쁜 소식을 선포하였다. 이것이 웨슬리의 첫 번째 야외설교이다. 그 날의 본문은 사61:1-2,눅4:18-19이다. 이때부터 웨슬리는 본격적으로 야외설교의 장이 열리게 되었다.18세기 부흥운동의 위대한 투사 세 사람은 비슷한 시기에 야외설교를 시작함으로써 부흥운동에 뛰어 들었다.조지 휫 필드는 1739년 2월17일에 시작, 존 웨슬리는 6주후인 4월2일에, 야외설교를 강하게 반대했던 찰스 웨슬리는 10주후 6월24일에 야외설교를 시작한다.

 

  웨슬리는 4월4일에 브리스톨 가까운 밥티스트밀 공터에서 1,500명에게 설교,8일에는 아침에 브리스톨 한복판에서 1,000명에게 설교, 이어서 킹스우드에 있는 하남 산 광부와 그 가족 1,500명에게 설교, 그날 저녁에는 킹스우드 건너 동네 로즈그린에 모인 약5,000명에게 설교하였다. 특히 하남 산에서 설교를 할 때는 광부들이 설교를 잘 경청하였고, 설교를 듣든 중에도 놀라운 성령의 역사가 나타났다. 많은 사람들이 죄를 회개하고 큰 소리를 지르며 영혼의 고통을 호소하고 성령의 강한 역사를 감당하지 못하여 뒤로 넘어져 경련 현상을 일으키고 더러는 입신의 경지에 들어가는 사람도 있었다.40월10일에는 브리스톨에서 조금 떨어진 바스에서 1,000명에게 설교, 오후에는 2,000명에게 설교,14일에는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구빈원에 가서 400명에게 설교, 15일에는 하남 산 언덕에 모인 5,000-6,000명에게 설교, 정오에는 3,000명에게 설교, 같은 날 늦은 오후에는 로즈그린에 모인 5,000명에게 설교하였다.

 

 웨슬리의 부흥회에서 병 고침을 받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의사들은 웨슬리 때문에 돈을 못 벌게 되었다고 한탄하기도 하였다. 한 번은 병원의사가 웨슬리부흥회에 참석해서 기도로 병이 낫는 것이 사실인지 확인하러 왔다가 자기 병원에 오는 환자가 기도로 병이 났다고 일어나 하나님을 찬양하며 고백하는 것을 목격하였다. 그 여인은 불치병으로 오렛동안 고생하는 사람이고 곧 죽게 될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의 병이 완전히 치료되어 흔적도 찾아볼 수 없게 되자 의사는 더 이상 아무 말도 못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시인하고 웨슬리를 떠나갔다. 여기저기서 회개와 통곡, 넘어지고 쓰러지는 일들, 귀신이 쫓겨나는 특별한 성령의 사역이 계속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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