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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스퍼드 학생시절(1720-1725) 고병국 2010-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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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옥스퍼드 학생시절(1720-1725)


웨슬리는 1720년 연간 40파운드의 장학금(차터하우스 장학금)을 얻어 입학했다. 입학 당시 자격은 중산층 이상이어야 하고, 반드시 영국 성공회 교인이어야 했다. 웨슬리는 중산층은 아니지만 아버지 사무엘 웨슬리가 국교회 목사였기에 가능했다. 옥스퍼드 대학교는 정치적으로는 보수, 종교와 학문의 구별이 없는 전체가 종교가 지배적인 학교이다. 그 당시 영국에는 신학대학이 별도로 없고 신학사 학위도 없었다. 옥스퍼드 대학교를 졸업하면 누구든지 성직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이 주어졌으며, 성직에 들어가는 것은 개인의 소명과 결단에 달렸었다. 당시 옥스퍼드가 주는 학위는 문학사,신학사,문학석사,신학박사,법학박사등이었다.문학사를 받으려면 3-4년이 걸렸고, 문학사를 받은 후 약1-2년 논문을 제출하여 시험합격하면 문학석사를 받을 수 있었다.신학사 학위를 받으려면 문학사 학위를 받은 다음 9년간의 과정을 마치고 논문을 통과해야 한다. 신학박사가 되려면 신학사가 된지 6년 후에 시작할 수 있었다.당시 옥스퍼드 대학의 문학석사 학위는 영국 사회 최고 엘리트 코스였다.


 웨슬리의 옥스퍼드 생활은 세 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하나는 1725년 성직임명을 받을 때까지 대학재학 시기, 다른 하나는 1726년 링컨 대학의 펠로우(Fellow:연구 교수)로 임명된 때부터 1729년 신성회(Holy Club)를 시작하기까지, 그리고 신성회를 시작하던 때부터 1735년 조지아 선교를 떠날 때까지이다. 그 중 옥스퍼드 대학생 시절의 이야기는 알려진 것이 별로 없다. 대학재학 때 웨슬리는 고전문학,라틴 시,희랍어 신약성서,히브리어 구약성서,신학서적을 탐구했다. 웨슬리는 학생시절 수입은 오로지 모교인 차터하우스에서 받는 장학금이 전부였기에, 빚에 쪼들리는 가난한 학생이었다. 그러나 웨슬리는 돈이 없어 고생을 많이 했지만 그것 때문에 세상을 부정적으로 보거나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거나 부자들을 나쁘게 생각하는 마음, 즉 삐뚤어진 마음이 없었다. 그렇다고 돈에 대한 이상한 욕심을 가져본 적도 없다. 이는 경건의 생활이 주는 유익이었다.1724년 문학학사를 받고 졸업했다.


 존 웨슬리는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약400여권의 책을 읽었으며, 학교를 졸업한 후 신성회가 해산되기 전 1734년까지 580권의 책을 읽었다. 이는 당시 대단한 독서광이었다. 그는 어려서부터 아버지와 어머니로부터 독서지도를 받았다. 특히 초대교부들의 책을 많이 정독하라는 아버지의 조언을 듣고 교부들의 책을 많이 읽었다. 그의 독서영역은 크게 세 부류이다. 고전,기독교신학,그외의 모든 분야에 관한 것이다. 그는 평생 고전을 즐겨 읽었고, 독서는 지식이 목적이 아니라 경건이 목적이었다. 독서는 경건의 방편이요 일종의 실천신학으로 여겼다. 그래서 독서 계획표를 만들어 체계적으로 읽었다. 이런 웨슬리의 책읽기는 1750년 출판한 『기독교문고』(Christian Library)에 잘 나타난다. 이 책은 50권으로 되었고, 모두 웨슬리가 직접 요약하고 발췌하여 편집한 것으로 약 200여권의 책이 실려 있다.


 웨슬리는 어머니 곁을 떠나 1724년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11년을 죄 가운데 살았던 시기라 고백한다. 이는 모르게 지은 죄 알게 지은 죄 등 평범한 사람들, 즉 거룩하지 못하고 연약한 보통 인간처럼 화를 잘 내고 남을 괴롭히는 나쁜 짓도 하는 그런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1725년부터 그에게 신앙에 근본적인 변화가 생겼다.


  1725년은 웨슬리에게 두 가지 이유에서 영적성장에 매우 중요한 해이다. 하나는 1725년 9월19일 주일에 준회원(deacon:집사)으로 사제안수를 받는다. 장로 안수(elder)는 1728년 9월22일 받았다. 또 하나 큰 의미는 자신의 영성형성을 하는데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영적교사들을 만나는 것이다. 그들은 중세기 신비주의 수도 성자인 토마스 A.캠피스(T.A.Kempis)와 영국 국교회의 주교이며 신비주의 영성가인 제레미 테일러(J.Taylor)그리고 옥스퍼드 대학교수요 자신의 스승인 윌리엄 로우(W.Law)이다.이 세 사람의 책은 웨슬리에게 꼭 필요한 실천신학을 가르쳐 주었고,일생동안 가장 중요한 영적 생활의 교과서가 되었다.


  웨슬리는 평생 책을 가까이한 사람이다. 그에게 책은 경건훈련이다. 웨슬리의 영성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것도 사실은 책이다. 그는 성직수임을 준비하는 기간에 영적독서는 성직을 수임하는데 많은 도전을 주었다. 그리고 자신의 전 생애를 하나님께 바치는 완전한 헌신을 결심하는데 결정적 동기가 된다. 그런 책들 중하나는 토마스 A 켐피스의 『그리스도를 본받아』(Imitation of Christ)이다. 그는 이 책을 읽고서 참된 신앙은 마음속에 뿌리내리고 자라서 모든 생각과 말과 행동까지 미치는 것이라는 사실을 더욱 확신하게 되었다.
마음의 신앙의 중요성을 더 절감했다.“1726년 에는 토마스 아 켐피스의 그리스도를 본받아 를 읽게 되었다. 내적경건(inward religion)곧 마음의 경건의 본질과 그 폭과 깊이가 과거 어느 때보다도 더 강한 빛 속에서 나에게 드러났다.”1)이때부터 웨슬리는 매일 1-2시간씩 기도하기 시작하였고 매주일 성만찬을 받았다. 그는 모든 말과 행동에서 죄를 짓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내적인 성결(inward holiness)을 얻기 위해서 기도했다.


  웨슬리 비슷한 시기에 제레미 테일러의 『거룩한 삶과 거룩한 죽음』(Rules and Exercises for Holy Living and Holy Dying)을 읽고
의도의 순수성에 대해 감동을 받았다. 그는 즉시 자신의 모든 삶을 하나님께 드리기로 결심하였다. 즉 모든 생각과 말과 행동을 드리기로 결심했다.2)


  웨슬리는 이어서 윌리엄 로우의 『그리스도인의 완전』(Christian Perfection)과 『경건한 삶에로의 중대한 부르심』(Serious Call to A Pious Life)을 읽고 자신을 완전한 그리스도인으로 살기로 결심한다.“나는 어느 때보다도 절반의 그리스도인이란 결코 있을 수 없다는 것을 확실히 알았다.3)고 고백한다.


 웨슬리는 이런 책을 읽고 자신의 삶을 성화의 삶으로 살아가기 위해 총칙과 아홉 가지 규칙을 만들어 실천하였다.“의지에 관한 총칙”은 이렇다.①모든 행동에서 자신의 목적을 숙고하라②모든 언행을 성부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시작하라③모든 중요한 일을 기도로 시작하라④어떤 유혹이라도 물리치고 자신의 의무를 완수하라. 이런 총칙아래 웨슬리가 매일 생활에서 마음의 성결과 삶의 성결을 이루기 위해 “거룩한 삶을 위한 시간 사용의 아홉 가지 규칙”을 보자.①하루의 삶을 하나님과 함께 시작하고 마치라-잠을 너무 많이 자지 말라②너의 소명에 부지런하여라③남은 시간을 경건생활에 사용하라④모든 성일을 거룩하게 지키라⑤술주정뱅이와 수다쟁이들을 피하라⑥쓸데없는 호기심과 세상 일,그리고 무익한 지식을 피하라⑦매일 밤 자신을 성찰하라⑧무슨 이유로도 최소한 기도를 위해서 한 시간을 떼어놓지 않고 보내는 날이 없게 하라⑨모든 종류의 정욕을 피하라. 그는 이후의 삶을 완전한 헌신,완전한 성화,완전한 사랑,완전한 그리스도인을 목표삼아 한 번도 변하지 않고 살았다. 이런 1725년의 사건을 회심이라 부른다. 이는 1738년 회심사건과 함께 두 날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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