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슬리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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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목회와 신성회이야기
고병국 2010-10-07 추천 0 댓글 0 조회 847
 

5.링컨 칼리지 교수와 첫 목회

 존 웨슬리는 1726년 옥스퍼드 대학교 링컨 칼리지 펠로우(교수)로 임명되어 1735년10월14일 조지아로 선교를 떠나기 전까지 교수생활을 하였다. 당시 펠로우는 정교수는 아니고 일종의 연구교수직이며, 대학에 머물러 살면서 강의를 하고 학생들의 개인지도를 맡는 전임교수직이었다. 펠로우는 학자나 정교수가 되기를 희망하는 학생들 중에서 최고로 우수한 학생들이 임명되었다. 펠로우가 되기 위해서는 미혼이어야 하고 결혼하면 즉시 임명이 취소된다. 당시 링컨 칼리지의 교수진은 학장1명에 12명의 펠로우가 있었다. 웨슬리는 펠로우로 있으면서 가르친 교과목은 고전문학과 논리학, 신약성서 그리스어, 고전문학과 철학이었다. 또 웨슬리는 대학의 교수와 학생들의 예배를 집례하고 설교하는 대학교회의 목사와 같은 역할을 맡았다. 이 시기에 그는 독서를 가장 많이 하였다. 그리고 체계적인 연구계획을 짜서 연구하였다. 월요일과 화요일에는 고전, 수요일에는 윤리와 논리학, 목요일에는 성서원어, 금요일에는 철학과 형이상학, 토요일에는 시문학과 수사학과 설교 작성과 편지쓰기, 주일에는 신학이었다.

 
 웨슬리는 또한 1727년부터 1729년 동안 대부분의 시간을 아버지를 도와 엡윗과 루트에서 부목사로 목회를 하였다. 이것이 첫 목회이었다. 특히 루트는 영국 북동쪽에 위치한 외진 곳으로 인구 250명 정도의 작은 농촌마을이었다. 루트지역의 교인들은 교양이 없고 더러운 환경이었다. 그러나 웨슬리는 즐겁게 목회생활을 하였다. 많은 시간을 책을 읽으면서 보냈다. 그러다가 1729년 옥스퍼드대학 링컨 칼리지 학장이 웨슬리를 학교로 불러 2년 만에 학교로 돌아왔다.


6.신성회이야기(1729-1735)

 웨슬리의 동생 찰스 웨슬리는 형과 같이 옥스퍼드대학 크라이스트처치 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자 곧 그 대학의 튜터(교수)가 되었다. 찰스 웨슬리는 형 웨슬리가 엡윗과 루트에 가 목회를 하는 동안 매주일 옥스퍼드대학교에서 두 친구(윌리암 몰간과 로버트 커크함)와 함께 성경과 경건서적을 읽고 대화하는 모임을 만들었다. 존 웨슬리가 2년간 첫 목회를 마치고 학교로 1729년 돌아오자 동생 찰스 웨슬리가 주선하여 모이는 모임에서 고전연구를 지도하고 영적생활의 증진을 돕는 조력자가 되었다. 웨슬리는 자연스럽게 찰스가 시작한 모임의 지도자가 되었다. 이것이 유명한 신성회(Holy Club)의 시작이다.


  이 모임은 학문과 경건의 훈련, 즉 기도와 성경 읽기와 성만찬 받기를 정해진 규칙에 따라 실천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웨슬리의 신성회에 대한 기록을 보자.“1729년11월에 옥스퍼드의 네 청년이 매주 3-4회 저녁에 함께 모여 그리스어 신약성경을 읽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링컨대학의 펠로우 존 웨슬리, 크라이스트처치 대학의 찰스 웨슬리, 크라이스트처치 대학의 윌리암 몰간, 그리고 머튼 대학의 로버트 커크함이었다.”1)이들을 다른 사람들은 규칙쟁이들라고 별명을 붙여준다. 그것이 감리교회의 명칭인 메도디스트(Methodists)이다. 또 다른 별명은 성경 벌레들, 열광주의자들, 의무 이상으로 일하는 이들 이 있다. 이 모든 것은 사실은 그들을 비웃는 것이었다.


  신성회 회원들이 처음에 한 것은 매주 3-4회 저녁에 모여서 고전을 읽고 주일에는 신학을 읽으며 학문과 경건의 대화를 나누는 일이었다. 그들의 독서 목적은 학문의 발전과 경건의 증진을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들의 관심은 규칙적으로 함께 모여서 독서와 대화와 기도를 함으로써 서로의 경건을 증진하는 일에 모아졌다. 그들이 주로 읽는 책은 초대교회와 중세기 성자들의 신비주의와 종교개혁 시대와 당대의 경건한 사람들의 작품이었다. 그들은 또한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을 금식일로 정하여 금식과 절식과 약식을 실천하였다. 이런 규칙적인 금식은 옥스퍼드 메도디스트 인들의 평생의 거룩한 습관이 되었다. 신성회의 기도는 주로 자기 성찰에 집중하였다.1732년부터는 거의 매일 저녁에 모여서 신약성경을 읽고 경건의 독서와 대화와 묵상을 통하여 자기의 마음과 생활을 철저히 성찰하고 자신을 개혁하는데 힘썼다. 즉 옥스퍼드 메도디스트들은 마음과 생활의 성결 즉 그리스도인의 완전한 성결을 얻기 위하여 함께 모이고 서로의 영혼을 책임지고 서로 감독하고 돌보고 권면하고 돕기 위하여 함께 모이는 사람들이었다. 신성회의 활동은, 주중에는 고전 특히 희랍어 성경을 연구하고, 주일에는 신학서적을 탐구하며 토론하고, 일주일에 한번 씩 감옥을 방문하여 갇힌 자를 돌보고, 일주일에 한번 씩 가난한 자와 병자들을 돌보았다. 그들은 오직 성경을 열심히 읽는 성경벌레들이었다. 즉 “오직 한 책의 사람”이 되기를 열망하였다. 여기서 한 책의 사람, 또는 성경 그리스도인이란 성경을 초대 교회가 해석한 대로 따르면서 성경을 모든 신앙과 삶의 전적이고 유일한 규칙으로 삼는 것을 의미한다.


  옥스퍼드 메도디스트들은 용기 있고 헌신적인 자선활동으로 심한 비판과 조롱을 받았다. 그때 웨슬리는 답변하기를, 메도디스트들이 이러한 일들을 하는 이유는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이며, 초대교회를 모방하는 것일 뿐이라고 역설한다. 웨슬리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경건의 행위와 자비의 행위 두 가지로 구분하여 설명하였다. 신성회의 활동이(성경을 읽고 기도를 하고 경건서적을 읽는 것) 경건행위라면, 감옥을 방문하고 가난한 자를 돌보고 병든 자를 돌보는 것은 자비의 행위이다. 이는 그리스도 사랑의 사회적 실천, 실천적 성결이라 한다. 신성회원들은 이런 것들을 그리스도의 삶과 초대교회에서 배웠다. 즉 신성회는 처음에는 학문적 발전을 도모하는 모임으로 시작하여 경건의 훈련을 더하고 더불어 사랑의 실천을 필수적인 활동으로 삼는 모임으로 발전하였다. 그리하여 진정한 기독교를 소유하고 완전한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추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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