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슬리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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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슬리신학
조지아 선교사 고병국 2012-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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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조지아 선교사로

 옥스퍼드 메도디스트들이 각자 소명을 따라 흩어지는 때에 존 웨슬리는 아버지의 역작인 『욥기주석』을 출판하기 위하여 런던을 방문하였다. 거기서 웨슬리는 국회의원이며 아메리카 조지아의 식민지 개척자인 오글도프(Orglethorpe)와 옥스퍼드 대학 친구로서 조지아 식민 통치 이사중의 한 사람인 버튼 박사를 만난다. 당시 영국은 빚을 진 사람도 감옥에 투옥시켰다.1년에 채무 불이행으로 투옥되는 사람이 약 4000명에 달해 감옥이 포화상태였다. 정부는 죄수 처리가 문제였다. 오글도프는 이런 죄수 처리문제를 해결하는 위원회 의장인데, 죄수들을 자유와 석방하는 법을 제정하였다. 석방된 죄수들을 식민지인 사우스캐롤라이나, 플로리다, 그리고 조지아에 이민시켜 식민지 개척에 이용하기로 되었다.1732년 조지 왕의 승인을 얻어 첫 시도로 조지아 에 사람을 보냈고, 조지아 공화국을 건설하려는 꿈을 갖고 죄수들을 이민시켰다. 그리고 인디언들에게 여러 가지 선문을 주고 친절히 대함으로 인디언 선교의 기반을 다져 놓았다. 오글도프는 조지아에 신뢰할만한 정치적인 협력자와 종교적인 협력자들이 필요했다. 사실 퀸스라는 초대 조지아 선교사를 보냈지만, 별로 좋은 효과를 보지 못하여, 후임자를 찾고 있었다. 무엇보다 성공적인 식민지 건설을 위해서 훌륭한 성직자들을 확보하는 것이 필요했고, 그런 사람을 찾고 있었다. 오글도프는 웨슬리아버지 사무엘 웨슬리와 친구사이이며, 이미 웨슬리형제와 옥스퍼드 메도디스트들을 잘 알고 있었다. 오글도프는 웨슬리 형제를 보자마자 조지아 선교사에 적임자라고 생각하고 새로운 식민지에 서교사로 가 줄 것을 강력이 요청한다.


  웨슬리는 감옥의 죄수들을 석방하고 그들에게 새로운 삶을 마련해 주려는 오글도프의 이민정책에 깊은 동정심을 느꼈다. 웨슬리는 오글도프의 제안에 감동을 받고 마음이 끌리었다. 그리고 웨슬리는 “이교들에게 설교함으로써 진정한 그리스도의 복음을 배우고 싶은 ”희망을 오글도프에게 표현한다. 웨슬리는 곧 형과 옥스퍼드 스승 윌리엄 로우를 찾아가 조언을 구한다. 두 사람의 긍정적인 대답을 얻자, 신성회들 중 몇 사람과 의논하자 적극적인 지지를 얻는다. 마지막으로 어머니에게 조안을 구하자, 어머니는“만일 내게 스무 아들 있다면 나는 그들 모두가 간다고 해도 기뻐할 것이다”라고 말한다.


 드디어 웨슬리는 1735년 10월14일 영국 여객선 시몬즈 호를 타고 조지아로 떠난다. 이 배에는 119명이 탔으며,26명의 모라비안 교도들이 함께 타고 있었다. 웨슬리의 일기를 통해 조지아선교의 동기를 알 수 있다.첫째는 자신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함이다. 조지아는 옥스퍼드 보다 자신의 성결을 이루는 데 훨씬 더 적합하다는 생각을 하였다. 둘째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려고 하는 것 이었다. 그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는데 가장 적합한 곳이 옥스퍼드가 아니라 조지아라 생각했다. 즉 조지아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할 일 더 많을 것이라 생각했다.“우리가 순수한 땅으로 가는 목적은 무슨 물질적인 부족을 채우기 위해서가 아니요 배설물 같은 세성의 부와 명예를 얻기 위함도 아니요, 오로지 우리의 영혼을 구원하고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하여 살기 위한 것 뿐이다”1) 셋째는 자신을 유혹하는 아름다운 여자가 없는 곳으로 가려는 것이었다. 조지아야 말로 세속에 오염되지 않은 순수한 환경이며 순수한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는 희망을 가졌다. 넷째는 인디언 부족을 구원하려는 것이었다. 다섯째는 거기서 더 많은 선을 행하려는 것이었다.


9.배 안에서

 시몬즈 여객선은 57일 동안 대서양을 항해 하여 조지아에 도착하였다. 당시 대서양 항해는 무섭고 험난한 항해였다. 그러나 웨슬리 형제 일행은 57일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옥스퍼드 메도디스트 규칙대로 생활하였다. 그리고 시몬즈 배 안에서 첫날부터 매일의 생활을 기록하기 시작하였다. 이때 쓰기 시작한 일기는 일생동안 계속 되었다.

 배안에서 그들이 지킨 생활 규칙을 보자. @오전 4-5시: 개인 기도에 전념하였다. @오전5-7시: 함께 성경을 읽었다, 초대교회의 문헌들과 비교 연구하면서 읽었다.@오전7시: 아침 식사를 하였다.@오전8시: 공동기도와 영적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오전9-12시: 존 웨슬리는 독일어를, 델라모트는 그리스어와 항해술을 공부했으며, 찰스 웨슬리는 설교를 쓰고, 잉함은 배에 있는 어린이를 가르쳤다.@정오12시: 함께 모여 각자가 한 일에 대하여 서로 이야기하고 다음일과 계획에 대하여 의논하였다. @오후1시: 점심식사를 하였다.@오후 점심식사 후-4시: 배안에서 이민자들에게 각자가 맡은 사람들에게 책을 읽어주거나 이야기를 들어 주었다.@오후4시: 오후기도 시간을 가졌으며, 어른들에게는 그날의 공과를 가르쳤고, 어린이들에게는 교리문답을 가르쳤다.@오후5-6시: 개인기도 시간을 가졌다.@오후6-7시: 각자 자기 선실에 들어가 거기 함께 탄 사람들에게 책을 읽어 주었다.(배 안에는 80명의 영국인들이 타고 있었다)@오후7시: 독일 모라비안 교인들과 함께 공중예배를 드렸다.@오후8시: 다시 모여 서로 권면하고 가르쳤다.@오후9-10시: 잠자리에 들었다. 메도디스트들은 항해 도중에도 옥스퍼드 규칙을 정확하게 지켰다. 이렇게 거룩한 규칙을 따르는 생활은 조지아에서도 변함없었으며, 평생 지속하였다.


  시몬즈 호는 크게 세 번의 폭풍우와 한 번의 태풍을 만났다. 이런 폭풍우와 태풍은 배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고통이었고, 괴로움이었다. 마실 물이 부족하여 아우성이었고, 잠자리가 젖어 누울 자리가 마땅치 않아 괴로웠다. 몇몇 사람은 심한 두통과 고열로 생명의 위기를 겪어야 했다. 그래 배안에 있는 사람들은 죽음의 공포에 질릴 수밖에 없었다. 이런 극도의 공포와 불안감 가운데 웨슬리는 기도하고 성경구절을 암송했지만 마음속의 불안감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점점 커져만 갔다. 웨슬리 동료들은 태풍의 바람에 넘어져 바닥에 쓸려가 버렸다. 이때 바닥에 넘어져 있는 메도디스트들은 어디선가 들려오는 평화스럽게 부르는 찬송 소리를 들었다. 바로 곁에 모라비안 교도들이 저녁예배를 드리고 있었다. 그들은 비에 젖고 바람에 넘어지면서도 찬송을 부르고 있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두려운 기색이 전혀 없었고 오히려 평화와 기쯤이 가득한 모습이었다. 웨슬리는 그들의 모습을 유심히 보았다, 같은 시간에 영국 사람들은 죽음의 공포에 떨며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너무 대조적이었다. 웨슬리는 모라비안교도들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그래서 웨슬리는 예배가 끝나자 그들에게 물었다.“당신은 두렵지 않는가?”그 사람의 대답은 “두렵지 않다. 오히려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할 뿐이다.”라고 대답한다. 웨슬리는 또 질문 한다“당신들 중에 있는 여자들과 어린아이들도 두렵지 않습니까?”그 사람은 “우리들 중에는 여자들이나 어린아이들도 죽는 것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습니다”고 대답한다. 이때 모라비안 교도의 대답은 웨슬리에게 폭풍보다 더 강한 충격을 주었고, 이후 그의 마음속에 지울 수 없는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때 웨슬리는 자신들과 모라비안 교도들과의 차이점을 두 가지 느꼈다. 첫째 차이점은 자신을 포함하여 메도디스트들은 기독교의 외면적 신앙은 소유했지만 내면적 신앙을 갖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메도디스트들은 마음의 신앙, 체험적 신앙이 없었다. 이때부터 웨슬리는 마음의 신앙을 추구하였으며, 올더스 게이트 거리의 집회에서 체험을 후에 한다. 두번째 차이점은 모라비아 교도들은 기쁨으로 마음껏 찬송을 부르는데, 자신들은 부를 찬송이 없다는 것이었다. 자신들은 기도문과 예배순서는 있지만 마음의 찬송이 없었다. 자발적으로 마음껏 소리 내어 외쳐 부르고 기쁨으로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는 노래가 없다는 것이 큰 차이점 이다 고 발견했다. 웨슬리는 그래서 배안에서 독일어를 배우고 그들의 찬송을 베우기 시작했다. 웨슬리는 배안에 모라비안 교도들을 통해 경건의 규칙과 의식을 중시하는 외면적 신앙만 가지고는 참다운 신자가 되기에 많이 부족하다는 사실과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는 마음의 싱안이 꼭 필요하다는 사실을 절실하게 경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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