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자리를 마다한 사람
사막교부 중 암모니우스(ammonius)라는 사람이 있다. 그는 유식한 학자였다. 그는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을 암송했다. 사막교부들 증언에 의하면 암모니우스는 오리겐, 디디무스, 피에리우스, 스테폰 등의 저술들 중 6,000,000 구절을 암송했다. 그에 대한 일화 하나가 있다.
어느 도시에서 암모니우스를 감독으로 삼으려고 티모테우스(381~385 알렉산드리아 대주교였다)에게 가서 부탁을 했다. 그러자 티모테우스는 그들에게 "암모니우스를 나에게 데려오십시오. 그러면 그를 감독으로 임명하겠습니다." 라고 말했다. 사람들은 특사들과 함께 암모니우스에게 갔다. 암모니우스는 감독직을 받아들이지 않고 사막을 떠나지도 않겠다고 맹세했지만, 그들도 양보를 하지 않았다. 그러자 암모니우스는 그들 앞에서 가위를 가져다가 자기의 왼쪽 귀를 베었다. 그리고는 "율법에 왼쪽 귀를 베인 사람은 제사장으로 임명될 수 없다고 했으니, 이제 나를 감독으로 임명할 수 없습니다." 라고 말했다.
그들은 암모니우스를 두고 떠나갔다. 돌아가서 티모테우스 주교에게 보고를 하자 주교는 "이 율법은 유대인들이나 지키라고 하십시오. 만일 여러분이 코가 없는 사람을 나에게 데려온다고 해도, 그 사람이 다른 면에서 합당하다면 나는 그 사람을 감독으로 임명할 것입니다." 라고 말했다.
그들은 다시 암모니우스에게로 가서 재차 감독직을 맡아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암모니우스가 "당신들이 강요한다면 내 혀를 잘라버리겠습니다." 라고 말하자, 그들은 암모니우스를 놓아두고 떠났다.
위 글은 초기 이집트 사막교부들의 탐방기 「초대사막수도사들의 이야기」에 나온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명예나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것을 마다하지 못한다. 아마 오늘날 그런 자리를 준다고 하면 과연 얼마나 마다할까? 쉽지 않다. 사막에 수도하는 자는 초야에 묻혀 하나님만 바라보면서 살아가는 자이다. 그런가하면 어느 도시의 감독의 자리는 초야에 묻혀 사는 자보다는 더 명예롭고 인기 있고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자리가 될 것이다. 그런데 그런 자리를 마다하다니, 목회를 수 십년 하다 보니 초년에는 몰랐던 "자리" 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될 수만 있으면 자리 하나 얻으려고 애를 쓰기도 한다. 심지어는 자존심도 없애고 구걸 하듯 비굴하기도 하고, 부당한 방법까지라도 동원하여 한 자리 획득하려고 한다. 오늘의 우리들의 모습을 보다가, 암모니우스의 이야기는 신선했다.
암모니우스 이야기를 읽던 중 기독교 인터넷 신문을 보고 "아. 이런 사람도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는 기사를 보았다. 몇 년전 기독교대한감리회 총회가 있었다. 새로운 감독 회장이 임기를 시작했다. 그리고 첫 감독 회의에서 모 목사를 본부 행정기획실장으로 인준했다. 그리고 얼마 후 기사를 보았다. "모 목사 행정기획실장 고사" 하는 내용이다. 그 자리를 고사하다니, 여러 사람들이 들어가고 싶어 하는 자리인데. 첫 생각은 그랬다. 고사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다. 혼자 생각을 했다. 마다하기 쉽지 않았을 텐데.
나를 포함해 우리들의 자화상은 어떤가? 마다하지를 잘 못한다. 특히 조금만 내게 유리하거나 명예가 되거나 사람들의 주목을 받을 수 있거나, 조금 더 편하고 좋은 자리라면 그렇다. 그래서 때로는 나의 능력, 나의 달란트와 상관없이 자리의 유혹을 이기지 못해 받아들이는 경우가 더러 많다.
때로는 NO, 거절을 잘하지 못해 낭패를 당하기도 한다. 목회 연륜이 더 많아질수록 사막 교부 암모니우스 같은 인물이 신선해 보인다. 왜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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