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만족
AJ. 크로닌이 쓴 책 『성채』 라는 것이 있다. 그 책의 내용은 이렇다. 젊은 의사가 대학을 졸업하고 뜻을 품고 광산촌으로 들어가 탄광의가 된다. 가난하고, 낙후되고, 소외된 광부들과 함께 살면서 의술을 베푼다. 여기까지는 참신한 모습이다. 그러다가 이 젊은 의사가 돈에 맛을 들이기 시작한다. 이때부터 이 의식 있던 젊은 의사는 세속적인 물욕과 욕망의 성채를 쌓기 시작한다. 돈벌이를 위해서 의술을 사용한다. 돈이 되는 일이라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주사로 고칠 수 있는 병을 수술을 해서 돈을 챙긴다. 조금 도려내면 될 수술을 크게 째는 큰 수술을 해서 돈을 벌어들였다. 그래서 부와 명성과 기반을 구축해 나간다.
부인이 눈물을 흘리며 옛날로 돌아가 달라고 애원하지만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러다가 마침내 실수하여 사람을 죽이게 된다. 그 순간 그가 쌓았던 성은 속수무책으로 무너져 내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순식간에 부와 명성과 신뢰를 잃게 된다. 그리고 나서 비로소 눈을 뜨게 된다. 인간의 욕망의 잠에서 깨어나기 시작한다. 그래서 옛날로 돌아간다. 남편이 이같이 돌아온 것이 너무 기쁜 아내는 맛있는 저녁 식사를 준비하기 위해 시장에 갔다 오는 길에 그만 교통사고로 죽는다. 모든 것을 졸지에 잃어버린 이 의사는 생전 처음으로 교회를 찾아가 무릎을 꿇고 처절한 눈물의 기도를 올린다.
이 책은 한 인간이 쌓은 욕망의 성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욕망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욕망의 모래성을 하늘까지 닿을 수 있도록 쌓으려고 한다. 언제 무너질지 모르고 그냥 쌓기만 한다. 그러나 우리가 알 것은 모래성은 무너질 수도 있는 것이다. 한번 바닷물이 밀물로 들어오게 되면 그렇게 공들여 쌓았던 모래성이 허물어지고 만다. 흔적도 없어지게 사라지고 만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 제 아무리 욕심을 채우려고 해도 그 욕심은 다 채워지지 않는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얻고 채우고, 성취함으로 만족을 누린다고 하면 사람은 만족을 누리지 못한다. 이유는 그 만족은 끝이 없기 때문이다. 행복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자족할 때 오는 것이다. 빵 한 개와 커피 한잔을 가지고도 자족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넓은 집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자족할 수 없는 사람이 있다. 자족이 무엇인가? 말 그대로 스스로 족하는 것이다. 즉, 스스로 이만하면 되겠다고 하는 것이다. 밥을 먹을 때에도 스스로 이만하면 내 건강과 나에게는 그만 먹어도 되겠다고 하면 그만 먹으면 탈이 날일이 없고 건강할 수 있다.그러나 입이 당긴다고 당기는 대로 다 먹으면 분명 탈이 난다. 어느 정도가 되었으면 감사, 자족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바울은 스스로 자족하는 비결을 배웠다고 했다. 풍부에 처하기도 하고 빈곤에 처해 보기도 하여서 어떤 상황에 있든지 일체의 비결을 배웠다고 했다. 사람이 그런 것 같다. 산전수전을 다 격은 사람은, 된다고 해서 교만하게 들뜨지도 않고 잘 안된다고 해서 실망하고 땅을 내려다보며 한숨을 쉬지 않는다. 음지가 있으면 양지가 있는 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매사에 감사하면서 느긋하게 여유를 갖는다. 이것이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
오늘 우리는 너무 조급증을 가지고 산다. 조금 되는가 싶으면, 세상에 이제는 걱정 없다, 고생 끝이다. 이제는 먹고 놀자고 한다. 반대로 조금 힘들고 어려우면 이제는 끝장이다. 절망이다 하고 포기 한다. 아니다. 지혜 자는 그렇지 않다.“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 보아라 이 두 가지를 하나님이 병행하게 하사 사람이 그의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 (전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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