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창
요즘 시간이 있을 때 하나하나 정리를 하고 싶은 것들이 있다. 그중 하나는 주보에 칼럼을 쓰기 시작했던 1999년 글을 문서 파일로 만드는 것이다. 지나간 주보를 보다보니 1999년부터 목회칼럼을 주보에 기록을 했었다. 어찌되었는지 그때 주보는 문서 파일이 없다. 남은 것은 주보철이다. 그렇다면 주보철 칼럼을 보고 일일이 독수리 타법으로 문서 작업을 해야 한다. 몇 년 전에도 한번 시도를 했지만 몇 개를 하고는 그만 두었다. 독수리 타법으로 하다 보니 진도가 잘 안 나가 그랬다. 그런데 지인이 소개해준 스캔 앱으로 했더니 신기하게도 되었다. 스캔으로 사진을 찍으면 ‘이미지를 텍스트로’ 전환시켜 카톡으로 공유해 PC 한글 문서 작업을 할 수 있도록 해서 교정까지 하면 된다. 흔히 IT기술의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그러면서 어느 칼럼을 보는데, 지금부터 한참 세월이 흘렀는데도, 세상은 변한 것이 없다. 를 느끼게 하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 전문을 실어본다. 제목은 ‘마음의 창’이다.
“오늘의 우리들 주변을 보노라면 무엇인지 모르게 혼탁한 단면을 보고 있는 것 같다. 사회의 어느 구석을 보더라도 어느 한 구석 시원한 소식을 듣기가 어려운 시대에 살고 있는 것 같다. 요즘 우리들 신문과 뉴스의 초미의 관심사는 법조계의 비리이다. 소위 이종기 변호사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인해 모 고검장이 사법사상 처음 있는 직권정지처분을 받은 일이다. 사법부가 어디인가? 다른 데는 몰라도, 마지막 보루여야 하는, 사법부 안에서 물고 물리는 추한 모습을 일반인에게 보여서야 되겠는가? 정치를 보아도, 시원한 생수를 마시듯 상쾌한 맛을 찾을 수 없다. 무엇이 이렇게 만들었는가? 오늘 우리들의 마음은 답답하고 무겁기만 하다. 이 모든 일들은 마음의 창이 안개가 자욱이 낀 것처럼 맑지 못한 이유 때문이 아닐까 한다.
사람의 행동은, 행동을 유발하는 원인 인자가 있다. 그것이 마음인 것이다. 성경에는 사람이 밖에서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더럽지 않고 안에서 밖으로 나오는 것이 더럽다고 하였다. 안에서 밖으로 나오는 것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그곳이 마음인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모름지기 다스리기 힘든 것이 있다면 마음이라고 했다. 옛 말에 산중에 도둑은 물리치기 쉬우나 자기 마음을 다스리기란 어렵다고 했다. 옛 성현들이 그토록 연마하며 훈련하였던 것은 다름 아닌 마음인 것이다. 나라를 다스리는 것의 기초도 자기 자신이요, 한 가정을 다스리는 것의 기초도 자기 자신이라고 했다. ‘수신제가 치국평천하’ 라고 했다. 사람의 마음은 항상 잘 닦지 않으면 안 된다. 마음의 창을 해맑게 닦아야 한다. 찌꺼기가 끼거나 얼룩이 지게 되면 분명한 것을 볼 수가 없다.
성경에도 사람의 마음을 흐리게 하는 것이 무엇이냐? 뇌물이라고 했다. 오늘의 사법부의 문제도, 정치권의 문제도 곧, 돈의 문제이다. 뇌물의 문제이다. 마음의 창을 무엇으로 닦아야 하는가? 성경은 마음의 거울이다. 거울 앞에 사람이 설 때 자신의 얼굴의 어느 부분이 더러운지, 때가 끼었는지, 어디가 얼룩이 있는지를 알 수 있다.마음의 창을 항상 닦자. 거울을 매일 같이 닦듯이 우리들의 마음의 창을 항상 닦자. 만일 오늘의 문제가 되는 모든 사람들이 마음의 창을 성경으로 닦을 수만 있다면 조용할 것이다. 앞으로는 신문을 보더라도, 뉴스를 듣더라도 우리들의 심장을 자극하는 뉴스거리가 없는 조용한 세상에서 살고 싶다. 조용히 물 흐르듯 잔잔한 미소를 짓는 사회 구석구석을 보고 싶다.“(1999.1.31.)
아마도 시간이 앞으로 또 십 수 년이 흘러도 세상은 여전히 이렇게 돌아갈 것 같다. 예수님이 재림주로 다시 오시기까지는 여전히 세상사는 그럴 것 같다. 다시 읽어보는 오래전 글이 씁쓰름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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