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세상은
처음 목회를 나간 때가 1984년이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한 해도 빠지지 않고 읽었던 것은 종이 신문이다. 지금도 종이 신문을 받아 보면, 1면 톱기사를 보고 마지막 면인 사설과 오피니언을 읽는다. 어느 순간부터 신문 읽는 순서를 맨 나중부터 거꾸로 읽어갔다. 종이 신문을 될 수만 있으면 꼼꼼히 흩어 읽으려고 한다. 왜, 그래야 세상 돌아가는 것을 알 수 있고, 현실 감각을 익히기 위함이다. 많은 사람들이 온라인 뉴스를 통해 세상을 보기도 하지만, 글쎄 나는 그것이 잘 안 된다. 종이 신문은 종합 정보를 제공해준다. 그리고 이런저런 기사를 보면서 웃고 울기도 한다. 무엇보다 ‘요즘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알 수 있다. 흘러간 2000년 칼럼을 문서 파일 작업을 하고 있다. “요즘 세상은” 제목의 글 전문을 실어본다.
“칼 바르트라는 신학자요 목사는, 목사에게는 한 손에는 성경책을 다른 한손에는 신문을 들고 있어야 된다고 했다. 그래서 목회자는 신문과 뉴스에 대한 관심이 크다. 성경이 텍스트이면 신문과 뉴스는 컨 텍스트라 할 수 있다. 목회 및 설교는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인간에게 하나님의 음성을 듣도록 하며, 문제가 있는 이 세상에서 어떻게 인간이 성경을 읽으면서 살아가야 하는 가를 제시하고 가르치는 것이다. 그러기에 신문과 뉴스를 접할 때면 좋다.
그런데 최근의 신문과 뉴스를 접할 때면 마음이 왠지 편치가 않다. 기분이 상쾌하고 듣기에도 좋은 소식 보다는 듣는 사람의 마음을 우울하게 하는 요소들이 많다. 이제는 정치적인 기사에서는 아예 신경을 쏟지 않고 그냥 스쳐 지나가는 실정이다. 그만큼 식상된 정치인들에 대한 불신감 때문인 것 같다. 그래도 울고 웃는 기사가 있는 사회면과 기타, 다른 보도 면을 통해 그나마 작은 위안도 받고 감성에 젓기도 한다. 며칠 전 어느 일간지의 사회면에 나온 기사를 보고 마음에 깊은 동정과 함께 분노가 치밀어 오는 것을 참느라고 힘이 들었다. 지금 우리나라의 경제는 말이 아니다. 공적자금 수십조를 쏟아 부어도 좀채로 회생 기미가 안 보이는 기업 경제, 거기에다가 최근에는 달러가 외환위기를 만났을 때처럼 올라가고 있다. 시중의 국민은행과 주택은행의 합병으로 인한 금융대란을 우려하고 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을 써야 할지를 모를 만큼 도처에는 복병이 도사리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염려가 되는 것은 가정 경제의 위기이다. 세금은 점점 많아지고 있고, 물가는 고가로 올라가고 있고, 앞날은 불투명한데 인심은 점점 메말라 가고 있다. 요즘의 세상이 이렇게 어수선하다 보니 범죄가 점점 기승을 부린다고 한다. 그런데 그 범죄형태가 지금까지의 형태와는 다른 생계형 강력범죄가 급증하고 있다는 것이다. 건설 현장에서 일용직으로 일하는 근로자 두 사람이 택시를 타고 가다 강도와 폭행을 하는 치한으로 변했다. 결국 두 사람은 체포가 되었다.
그 중의 한 사람이 한 말이 왠지 마음을 씁쓰레하게 한다. 두 아이를 둔 아버지인 한 사람은 경찰에서 “불황으로 일자리가 없어 강도짓 말고는 할 것이 없었다.”라고 말했다. 누가, 무엇이 열심히 일하고 땀 흘린 만큼 평범하게 살려고 하는 서민들의 마음을 이렇게 격분케 했는가 묻고 싶다. 그런가 하면 다른 일부에서는 서민들의 눈물겨운 고단한 삶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한 끼 20만원 하는 클럽이 북적 거린다는 것이다. 한 병에 100만원이 넘는 양주가 잘 팔리는 나라, 여성 코트 한 벌이 5000만원, 300만∼1000만 원짜리 핸드백이 잘 팔리는 도시, 외제 고급 승용차가 아니면 들어가지도 못한다는 칵테일 바, 도대체가 정신이 있는 사람들인가? 그 나라와 도시가 우리가 사는 금수강산이요, 후대에게 물려줄 나라인 대한민국, 서울의 강남 로데오거리라고 한다. 이리니 분통이 터질 수밖에. 주여!“ (2000.12.24.)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요즘 세상은’ 그렇게 변한 것 없는 것 같다. 그때나 지금이나 분통 터지는 사건을 접할 때면 역시 힘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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